•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강이식(姜以式)

연관목차보기

강이식(姜以式)

시대 : 고구려
생몰년 : 미상
본관 : 진주
상세내용

고구려의 장수로 임유관전투에서 중국 수나라의 침입을 격파한 명장.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598년(고구려 영양왕 9) 국력을 과시하면서 고구려를 침공할 목적으로 협박조의 국서를 보내왔다. 이때 강이식은 “무례한 국서에는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할 일이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병마도원수가 되어 정병 5만과 말갈병 1만을 거느리고 요서지방으로 나아가 요서총관 위충과 접전하다가 임유관(현 산해관 남서쪽)으로 거짓 후퇴하였다. 수의 문제는 30만 대군을 일으켜 양량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임유관으로 보내고, 주나후를 수군총관으로 삼아 바다로 출행시키면서 평양으로 출전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선박을 이끌고 요해로 들어와 양양의 대병에게 군량을 대주려는 속임수 전략이었다. 강이식은 이를 미리 간파하고 수군으로 바다에 나아가 나후의 군량선을 격파하고, 육군은 출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수나라 군사들은 양식이 떨어지고, 마침 6월 장마철이라 기아와 질병으로 인하여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던 강이식은 이때를 기회로 총공격을 가하여 유수에서 수나라 군사들을 거의 섬멸하고 군량과 무기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후로 수의 문제는 고구려를 두려워하여 다시는 침공하지 못하였다. 진주강씨의 시조로 경남 진주시에 그의 사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