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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장수왕(長壽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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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長壽王)

시대 : 고구려
생몰년 : 394년(광개토왕 4)~491년(장수왕 79)
시호 : 강(康)
상세내용

고구려의 제20대 왕. 재위 413~491년.

광개토왕의 맏아들. 이름은 거련(巨連, 巨璉). 409년에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에 즉위하여 중국 남조의 나라와 차례로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북조의 북위 및 백제를 견제하였다. 그리고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 그와 적대관계에 있는 북아시아의 유연 등과 다각적인 외교관계를 맺어 서방의 안정을 이룩하였다. 또한 장수왕은 거란족을 압박하고, 427년에 평양천도를 단행하여 백제·신라를 압박하는 남하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455년에 개로왕이 즉위한 틈을 이용하여 백제를 공격한 바 있었던 장수왕은 475년에 또다시 백제를 공격하였다. 469년 8월 백제군이 남쪽 변경을 침략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승려 도림(道琳)을 첩자로 파견하여 바둑과 장기로 개로왕의 환심을 사게 한 뒤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국고와 백성의 힘을 소모시켰던 장수왕은 도망쳐온 도림의 보고를 받고 475년 9월 친히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였다. 성문을 굳게 닫고 싸움에 응하지 않는 개로왕을 보고, 장수왕은 대로 제우(齊于)와 백제에서 죄를 짓고 도망해 온 재증걸루(再曾桀婁)·고이만년(古尒萬年) 등에게 군사를 주어 네 갈래로 나누어 공격한 뒤, 바람을 이용한 화공법으로 성문을 불태워 북성을 7일만에 함락시키고 다시 남성으로 옮겨 공격하였다. 이에, 개로왕은 두려워하는 성 안의 백성들을 뒤로 한 채 수십명의 기병만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으나, 고구려의 장수 재증걸루 등의 추격을 받아 사로잡히고 말았다. 재증걸루는 말에서 내려 개로왕에게 절한 다음 얼굴에 침을 뱉고 그 죄를 꾸짖었다. 그리고 다시 포박하여 개로왕을 아차성(阿且城) 아래로 보내 죽였다. 장수왕은 이 전투에서 남녀 8천명을 사로잡았다.

장수왕은 부왕의 업적을 기려 광개토왕비를 세우고, 서쪽으로 요하, 동쪽으로 혼춘, 북쪽으로 개원, 남쪽으로 아산만·남양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였다. 특히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하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백제의 개로왕을 전사시키고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였으며, 백제와 군사동맹을 맺은 신라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468년에 실직주성을 공략하고, 481년에 다시 호명성 등 일곱 성을 함락하였다. 중원고구려비는 장수왕의 이러한 남하정책의 산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서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