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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金允侯)

시대 : 고려
생몰년 : 미상
관련전투 : 처인성전투(處仁城戰鬪) 충주산성전투(忠州山城戰鬪)
관련성곽 : 처인성(處仁城) 충주산성(忠州山城)
상세내용

고려 후기에 용인 처인성에서 몽고군을 격파한 승장.

일찍이 중이 되어 백현원에 있다가 1232년(고종 19)에 몽고병이 침입하므로 처인성(處仁城 : 지금의 용인)으로 피난하였다. 12월 중순 살리타(撒禮塔)의 몽고 주력부대가 수원의 속읍인 처인성을 포위 공격하였는데, 당시 처인성에는 주변의 주민들이 고려군과 함께 수비에 임하고 있었다. 이때 김윤후는 몽고군을 진두 지휘하는 살리타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 처인성의 고려 군민은 지휘관의 전사로 전의를 상실한 적을 공격하여 많은 적을 죽이거나 생포하여 이를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여 섭랑장에 임명되고, 뒤에 충주산성 방호별감이 되었다. 그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주성을 포위한 지 70여일이 되어 식량이 떨어져 위태롭게 되었을 때, 병사들을 독려하기를 “만일 힘을 다하면 귀천 없이 모두 관작을 제수할 것이다”라 하고 마침내 관노의 부적을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주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 싸워 적을 물리쳤다. 그 공으로 감문위상장군이 되었고, 그밖에 군공을 세운 자들도 관노·백성 할 것 없이 모두 관작이 제수되었다. 1258년에 동북면병마사가 되었으나, 그때 동북면은 이미 몽고군의 수중에 들어갔으므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262년(원종 3)에 추밀원부사·예부상서가 되었으며, 이듬해 수사공 우복야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