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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구(白江口)전투

시대 : 신라
시기 : 663년(문무왕) 8월
전투지역 : 금강하구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신라 문무왕 3년(663) 나당연합군이 왜(倭)가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한 400척의 전함과 군사 2만 7천을 금강하구에서 궤멸시킨 전투.

660년 7월 18일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바다 건너 왜 조정은 술렁거렸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중신회의가 개최되었다. 왜는 그 동안과 마찬가지로 백제에 대한 전폭적인 군사적 지원을 하기로 결의하고, 661년 8월 우선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보급선단을 파견하는 한편, 동년 9월에 백제왕자 부여풍에게 병력 5천을 주어 귀국시켰다. 이듬해 6월 왜는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무기를 수선하고 선박을 정비하고 군병의 식량을 비축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한반도 출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백강구는 충남 장항과 전북 군산 사이를 흐르는 금강하구를 말한다. 왜의 함대가 백제의 수도 부여 사비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금강 하구의 넓이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강의 입구라기보다 바다의 만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것은 금강이 규모가 크고 수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가 만들어낸 것이다.


663년 2월 왜의 2만 7천 대군이 침공해 온다는 첩보를 접한 신라 수뇌부는 그들의 상륙이 예상되는 백제 남부의 요지를 점령했다. 이에 따라 백제부흥군의 지휘본부도 김제에서 금강하구에 위치한 주류성으로 옮겼다.

왜의 주력부대에 출격 명령이 떨어진 것은 이보다 한 달 후이며, 그해 6월에 신라의 해안에 출현하여 2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8월 17일 신라는 주류성을 포위했고, 동시에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는 부여에 정박한 전함 170척을 이끌고 금강하구로 내려가 전열을 구축했다. 이로써 당군은 금강하구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8월 27일 왜 함대 중 선발대가 금강하구에 도착하여 당 함대와 일대 회전이 벌였지만 패퇴하고 말았다.

당은 추격을 하지 않고 함대의 전열을 그대로 고수하며 바다 쪽을 향해 호구형진을 치고 기다렸다. 다음날 왜 함대는 바닷물이 금강 하구쪽으로 밀려들어가는 밀물 때 당 함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개시하면서 당 함대가 만들어놓은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왜 함대는 마침내 완전 포위되어 좌우에서 사격을 받았는데, 마침 강한 동풍이 강 쪽에서 바다 쪽으로 불기 시작하면서 왜 함대 400척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 전투로 왜군은 전함 400척과 병력 2만여 명을 잃는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왜는 이후 한반도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고, 이로써 백제부흥군은 최대의 후원자를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