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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평양성(平壤城)전투(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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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平壤城)전투(2차)

시대 : 조선
시기 : 1593년(선조 26) 1월 6일~9일
전투지역 : 평양
전쟁상대국 : 일본
관련유적 : 평양성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1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벌인 전투.

명은 원군으로 파견하였던 조승훈의 군대가 1차 평양성전투에서 왜군에게 패하고 돌아오자 일본과의 잠정적인 휴전을 하면서 시간을 버는 한편, 요동지방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평양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격퇴하기로 하고 이여송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조선을 구원하게 하였다. 압록강을 건너온 명군은 1월 6일 이른 아침 조선의 관군과 함께 평양성을 포위하고 성문 밖에 진을 쳤다.

조선에서도 도원수 김명원을 비롯하여 이일·김응서의 군대와 휴정·유정의 승군도 합세하였다. 이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연광정의 토굴로 쫓겨 들어가고 칠성문·보통문·모란봉 등지의 제장들도 여기에 모여서 응전하였다. 이여송은 이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으나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자, 막다른 지경에 빠진 왜적들이 발악할 것을 염려하여, 성 밖으로 군사를 거두고 고니시에게 길을 열어줄 테니 퇴각하라고 하였다.

고니시는 군량·무기가 다하여 없어지고 원군도 오지 않아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여송이 이 사실을 조선 진영에 통보하자 조선측은 복병을 철수하고 길을 열어주었으며, 이에 고니시는 밤중에 남은 군사를 거두어 서울로 후퇴하고 조선은 비로소 7개월 만에 평양성을 탈환하게 되었다.

이 평양성탈환은 이제까지 후퇴만 계속하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주요 계기가 된 전투였으며, 관서지방이 왜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