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칠천량(漆川梁)해전

연관목차보기

칠천량(漆川梁)해전

시대 : 조선
시기 : 1597년(선조 30) 7월 14일~16일
전투지역 : 경남 거제시 칠천량 앞바다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7년(선조 30) 7월 14일에서 16일까지 조선과 일본 수군 사이에 칠천량 앞바다에서 벌인 전투.

명군의 참전 이후 시작되었던 강화교섭이 결국 결렬되자 재침을 결심한 일본군은 1597년 1월초부터 병력을 강화시켜나갔다. 이 해 7월에 접어들자 일본군 주력이 6백 척의 함선에 분승하여 부산에 도착하자 조선군 도원수 권율은 수군통제사 원균에게 이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임 통제사 이순신을 대신하게 된 신임 통제사 원균은 육군의 지원 없이 수군만 출동할 경우 적지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출전 명령을 재고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균은 휘하 수군의 총출동을 결심하고 7월 14일 새벽 한산도 본영의 군사를 모두 집결시켜 함대를 편성하고 부산을 향하여 출발하여 저녁 무렵 부산 앞바다 절영도 근해에 도달하였다. 한편, 일본군은 웅천·안골포·가덕도로 이어지는 연락망을 통해 조선군의 이동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수군과 육군이 협동작전을 전개하여 조선수군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먼저 선공을 가하였다. 아직 전열을 갖추진 못한 상태에서 공격을 받은 조선수군은 고전을 치르고 가덕도로 철수하였다. 승기를 잡은 일본군의 급속한 추격을 피하기 위해 조선수군은 신속히 후퇴하였으며 날이 어두워지자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 거제도 북단 영등포에 병력을 상륙시켰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일본 육군이 매복하고 있었으며 이들에게 야습을 당한 조선 수군은 난전 끝에 4백여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여 다시 칠천도로 이동하였다. 항해와 전투에 지친 조선군이 칠천도 부근 해상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일본 수군은 야음을 틈타 이들을 은밀히 포위하고 7월 15일 새벽 또다시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전투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재차 기습을 당한 조선 수군은 우세한 화력이나 기동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완전히 궤멸되고 말았다.

통제사 원균은 칠천도에 상륙하여 도피하려 하였으나 일본군 추격대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 등 주요 지휘관도 혼전중 모두 전사하였다. 다만,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휘하 전함 12척을 인솔하고 탈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