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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진주성(晋州城)전투(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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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晋州城)전투(2차)

시대 : 조선
시기 : 1593년(선조 26) 6월 21일~29일
전투지역 : 경남 진주시 진주성
전쟁상대국 : 일본
관련유적 : 진주성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창의사 김천일이 이끄는 조선군과 의병이 진주성에서 왜군과 벌인 전투.

지난 해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전라도 진출이 좌절된 왜군은 본국의 도요토미로부터 진주성 공격에 대한 작전명령을 통보받고 1593년 6월 초부터 진주성 공격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때는 명나라와 일본이 화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여서 왜군으로서는 앞서 김시민에 의한 패전을 설욕하고, 한편으로는 강화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이때 명나라는 회담을 이유로 싸움을 회피하고, 도원수 김명원, 전라순찰사 권율 등이 조정의 명으로 의령에 도착하였으나, 적의 기세에 눌려 후퇴하였다. 이에 창의사 김천일이 발분하여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의병장 고종후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진주성에 들어가 앞서 입성한 김해부사 이종인 등과 합세하였다.

이때 군사는 수천 명에 불과하여 적의 대군과 싸우기에는 전투력이 크게 부족하였고, 거기에다 진주목사 서예원은 명나라 장수 접대일로 인해 오랫동안 상주에 있다가 적의 소식을 듣고 진주로 급히 돌아와 미처 조처를 취할 여유도 없어 김천일이 지휘를 담당하였다.


적은 6월 21일 진주성을 포위하고 다음 날부터 침입 태세를 갖추었고, 성 안에서는 부대를 편성하여 구역을 나누어 성을 지키고 있었다. 적은 동문 밖에 흙을 모아 높은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흙집을 지어 성을 내려다보고 탄환을 발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성 안에서도 높은 언덕을 마주 만들어 거기서 현자포를 쏘아 적의 소굴을 격파하며 항전하였다. 이에 적은 성의 밑뿌리를 파서 성을 무너뜨리려 하였고, 성 안에서는 이를 막는 데 사력을 다하였다. 적의 시체는 성 밖에 무수히 깔려 있었지만, 적은 단념하지 않았다. 마침내 28일 큰비가 내려 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고, 황진이 탄환에 맞아 전사하여 조선군의 피해가 커졌다.

다음 날 적은 귀갑차를 동원하여 동문 성벽 밑에 접근하고 무너진 성벽으로 난입하였다. 이종인은 군사와 더불어 활을 버리고 창과 칼로써 처참한 백병전을 전개하였으나 사태가 돌이킬 수 없이 불리해지자 김천일·고종후·최경회 등은 촉석루에서 북향재배한 뒤 남강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한편, 이종인·김준민 등은 성 안에 있는 남녀들과 칼을 휘두르며 시가전을 폈으나 역부족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때 의기 논개가 의암에서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은 비록 진주성을 함락시키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한 손실도 막대하여 더 이상 전진하지도 못하고 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