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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직산(稷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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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稷山)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597년(선조 30) 9월 7일
전투지역 : 충남 천안시 직산면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임진왜란 중인 1597년(선조 30) 9월 7일 직산에서 명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

1597년 1월부터 병력을 증강시킨 일본군은 7월에 6백여 척의 선박으로 추가 병력을 경상도 해역에 상륙시키는 등 총 14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경상·전라 지역을 석권하였다. 일본군은 이어 충청도까지 장악하고 계속 북진하여 경기지역으로 진공하였다.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조선은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명군 주력부대는 남하하여 일본군을 차단하려 하여 경기도 남쪽 직산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명군이 9월 7일 직산 남쪽 삼거리 부근에 도달하여 도로를 차단하고 방어진을 펴고 있었다. 이때 북상하면서 이곳을 지나던 일본군이 명군을 발견하고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미 진지를 구축한 명군은 일본군에게 포격을 가하면서 응전하였다. 일본군은 조총 사격을 가하고 돌격을 감행하였으나 포격으로 일본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명군은 백병전에서도 밀리지 않아 승리할 수 있었다.

서전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다시 명군 진지를 포위하기 위하여 병력을 좌·우로 나누어 접근하여 다시 접전이 벌어졌으나 일본군의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명 증원군이 도착하여 형세가 역전되었다. 명군은 기존 병력과 증원군을 합하여 일본군을 역포위하여 일본군을 압도하였다. 천안에서 급파된 일본군 기병대가 합세하였으나 전세를 뒤집지는 못하였고 6차의 접전 끝에 일본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서울 진격을 포기하고 남하할 수밖에 없었고, 한편 조·명 연합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면서 압박을 가하자 일본군은 충청도 지역을 버리고 남하하여 다시 해안으로 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