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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의주성(義州城)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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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성(義州城)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627년(인조 5) 1월 13일~14일
전투지역 : 평안북도 의주성
전쟁상대국 : 후금
상세내용

정묘호란 때인 1627년(인조 5) 1월 13일부터 14일까지 조선군과 후금군이 의주성에서 벌인 전투.

이 해 1월 8일 심양을 출발한 후금군은 1월 12일에 압록강 강중의 섬까지 진출하여 침공준비를 갖추었다. 총병력은 3만 6천명이었으며 6개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압록강과 연한 의주성은 조선의 첫 관문으로 당시 후금과의 무력충돌에 대비하여 증강 배치된 3천여 병력이 있었다.

압록강 대안에 후금군이 집결하자 의주부윤 이완은 병력 차이가 커서 출성공격은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성을 지키면서 침공군의 진격을 지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후금군은 2개 부대로 의주성을 포위하고 그 외의 부대는 주변 일대에 배치하여 조선군의 증원을 차단하였다. 1월 13일 낮부터 후금군의 전면공격이 시작되었는데, 후금군은 병력의 우세를 앞세워 정면 공격전을 벌였으며, 조선군은 성벽에 거치시킨 총통 등 화포사격을 가하고 화살을 쏘아 이를 저지하였다. 양군은 밤중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조선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후금군은 정면공격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포위망을 늦추어 조선군의 경계태세를 이완시켰다. 아울러 성에서 도망한 군민을 잡아 이들로부터 의주성 서문 밖에 있는 수로와 서쪽 수문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음을 알아내고는 야음을 틈타 수문을 통해 100여명의 병력을 의주 성내에 침투시켰다.

1월 14일 밤 미리 잠입한 후금군 특공대가 의주성내 민가와 군기고에 방화하여 각지에서 불길이 오르자 이와 동시에 후금군이 일제히 돌격하였다. 안팎에서 공격을 받게 되어 혼란에 빠진 조선군은 후금군을 막아내지 못해 먼저 남문이 돌파당하고 이어서 서문과 동문이 깨져 후금군의 진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 안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 난전 중에 서문의 장대에서 지휘하던 의주부윤 이완이 후금군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으며 주장을 잃은 조선군은 대부분 후금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후금군의 정면공격은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으나 수문을 통한 특공대의 잠입을 막지 못하여 수성에 실패하였으며 의주에서 후금군을 지연하지 못한 결과 평안도 청북 지역 방위에 많은 곤란이 초래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