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사천(泗川)해전

연관목차보기

사천(泗川)해전

시대 : 조선
시기 : 1592년(선조 25) 5월 29일
전투지역 : 경남 사천시 해안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5월 29일 전라좌수영 소속 조선 수군이 사천 앞바다에 정박중이던 일본수군 선단을 격멸한 전투.

일본 수군은 1592년 5월 7일의 옥포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경상도 서쪽 해안과 전라도 해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으로 북상하려는 당초 의도를 바꾸지 않았다. 북상중인 육군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해안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 것이다.
일본군은 먼저 경상도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천과 곤양해안에 전선을 보내 위력 수색 정찰활동을 강화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일본군의 압박을 받자 당포 부근에 있던 경상우수영의 잔여 함대를 노량 부근으로 이동시키고 전라좌수영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미 경상도 지역까지 전투구역으로 허가받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5월 29일 돌격전함 거북선을 포함한 23척의 함대를 출동시켰다. 전라좌수영 함대는 하동 포구에서 경상우수영 소속 전함 3척과 합류하여 사천 앞바다로 이동하였다.

조선수군 함대는 사천 부근에서 이동 중이던 일본군 전선 1척과 조우하였는데 일본군이 접전을 피하고 해안에 배를 유기한 채 도주하므로 화공을 가하여 소각하고 곧바로 사천해안에 도달하였다. 사천 포구에는 일본군 전함 13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병력은 대부분 상륙하여 해안가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간조기였으므로 조선군의 대형함선은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이순신은 일본군 선단을 유인해내기 위해 선수를 돌려 후퇴하였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이 퇴각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일부 병력이 승선하여 추격에 나섰다. 대형 전함 판옥선이 활동하기 편리한 외양으로 일본군을 유인한 조선 수군은 일시에 선수를 돌려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며 추격하던 일본군 함대가 진용을 갖추기 전에 거북선을 돌격시켜 근접 공격을 개시하였다.

역습을 당한 일본군 함선들은 사천 포구 쪽으로 밀리기 시작하였는데 때 마침 조수가 바뀌어 만조기가 되자 판옥전선들이 해안 부근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수군은 총 공세를 펴면서 선창 부근까지 접근하여 화공을 계속 가하였고 일본군은 전함 13척이 모두 격침되거나 불에 타버렸다. 일본군은 총통과 화포 등 원거리 중화기를 갖춘 조선군 전함의 위력과 기동성을 알지 못하고 유인전에 말려들어 참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