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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부산포(釜山浦)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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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釜山浦)해전

시대 : 조선
시기 : 1592년(선조 25년) 9월 1일
전투지역 : 부산 부산포 앞바다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임진왜란 중인 1592년(선조 25년) 9월 1일 조선 수군 통합함대가 부산포에 정박중이던 일본군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100여척을 격파한 전투.

1592년 4월 침공 후 빠르게 진격하여 한성과 평양까지 점령한 일본군은 당초 예상보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조선 전역을 점령하여 물자를 확보하고 조선 조정에 압박을 가하려 하였다. 일본군은 먼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출하는 통로인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육군 전력을 집결시키면서 한성지역에서 약탈한 물자를 수송하고 병력을 이동시켰다. 일본군이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조선의 조정은 이들의 움직임을 본국으로 철수하려는 준비작업으로 판단하고 수군에 해상 봉쇄를 지시하였다.

8월 24일에 조선 수군의 주력이 된 전라좌수영 함대는 우수영 소속 전력과 함께 여수항을 출동하여 다음날 사량 앞바다에서 경상 우수영 함대와 합류하였다. 조선 수군 통합함대는 판옥선 44척을 비롯한 총 166척의 대함대였다. 이들은 당포·거제도·웅천을 거쳐 조정의 지시대로 낙동강 하구를 봉쇄하고 대기하였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군 수군 병력 8천과 함대 430척이 집결하여 있었다. 9월 1일 조선 함대는 새벽에 가덕도를 출발하여 절영대까지 진출한 후 부산포의 적정을 탐지한 결과 대부분 함선이 포구에 계류중임을 알게 된 조선 수군은 기습 공격하기로 하고 전 함대를 이동시켰다.

조선 수군은 이동 중 초량에서 출동하여 조선 함대의 진로를 방해하려 한 일본군 전선 4척과 조우하였으나 모두 격침시키고 전함대가 장사진으로 전개되어 종대 대형으로 포구에 돌진하면서 화포 공격을 가하였다. 일본군 함대는 대부분 계류된 상태였으며 조직적으로 대항하지도 못하였다. 포구 어귀에 배치된 일본군선 100여척을 파괴한 조선 수군은 전과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작전을 계속하지 않고 물러났으며 통합함대를 해산하고 각자의 수영으로 복귀하였다.

이 전투 후 완전히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군의 해상활동은 더욱 위축되어 일본과 부산간 주보급로 확보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