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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노량(露梁)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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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露梁)해전

시대 : 조선
시기 :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전투지역 : 경상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1598년(선조 31) 11월 19일에 조선군과 명군 연합함대가 후퇴하는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 수군함대를 격멸한 전투.

도요토미(豊臣秀吉)가 죽은 후 철수 명령을 받은 일본군은 부산방면으로 철수하기 위해 우선 전라도 왜교성에 집결하였다. 일본군의 의도를 파악한 조·명 수군의 연합함대는 5백여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광양만 일대를 차단하였다. 고니시군은 명 진린 제독과 조선 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뇌물을 보내어 철수로 보장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하자 먼저 이동하여 사천 남쪽의 창선도에 대기중인 소오군과 시마즈군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창선도의 일본군은 왜교성에 고립된 고니시군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5백여 척의 함대를 편성하여 11월 18일 밤에 광양만으로 출동하였다.

일본군이 외부와 연락을 취하고 있음을 탐지한 조·명 연합군은 일본군 구원부대를 먼저 격멸하기로 작전계획을 세우고 노량 부근에 포진하여 일본군 구원부대의 이동경로를 차단하려 하였다. 11월 18일 밤 척후선이 수집한 정보를 통하여 일본군 대선단이 노량해협을 통과하여 대도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다음날인 11월 19일 새벽에 노량 앞바다에 집결하였다. 연합함대의 주력은 일본군 선단을 좌우에서 포위하였으며 명군 부총병 등자룡이 지휘하는 선단이 선봉이 되어 일본군 함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전투가 개시되자 일본군은 교전을 가급적 회피하고 전력을 보전한 채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편대가 앞장서서 선제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연합함대의 기세를 꺾기 위해 명수군 제독 진린이 승선한 대장선을 표적 삼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조선군 함대가 신속히 기동하여 이를 구원하고 연달아 수척의 일본 함선을 격파하자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조·명연합군은 파괴력과 살상능력이 우수한 원거리 화포를 사용하여 일본군 함대에 많은 타격을 입혔으며, 일본군 역시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용한 전력을 총동원하여 전투에 임하였다. 하루 종일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은 결국 진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선수를 돌려 퇴각하였으며 일부는 배를 버리고 남해도 서북해안과 관음포 부근에 상륙하여 육로를 따라 남해 방향으로 탈출하였다.

이리하여 고니시군은 조명연합군이 전투 후 전장정리를 하는 동안 해안 봉쇄가 소홀해지자 11월 20일 새벽에 왜교성을 탈출하여 남해도 남단을 거쳐 거제도에서 시마즈, 소오군과 합류하여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전기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전투인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5백여척의 총 함선 중 2백 척을 잃었으며 조·명연합군의 피해도 적지 않아 조선군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전투 중에 전사하는 불행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