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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남원(南原)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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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南原)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597년(선조 30) 8월 13일~16일
전투지역 : 전북 남원 일원
전쟁상대국 : 일본
관련유적 : 남원성
상세내용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8월 13일에서 16일까지 조·명연합군이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당시 왜군이 전라도 구례를 점령하고 남원으로 북상하고 있을 때 남원에는 명의 부총병 양원이 3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원성을 지키고 있었다. 양원은 왜군이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라병사 이복남에게 조선군의 증원을 요청하여 관군 1천명을 받아 4천여 명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일본군은 우키타 히데이에가 거느린 5만6천여 명의 대병력이었다. 이들은 8월 13일 남원 교외에 진영을 설치하고 성 외곽을 포위한 후 조총사격을 가하여왔다. 이에 조·명연합군은 승자총통과 비격진천뢰 등을 발사하여 이들을 격퇴시켰다. 그러자 왜군은 14일부터 공성 기구를 새로 제작하고 참호를 메꾸는 등 본격적인 공격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때 양원은 전주에 주둔하고 있던 유격장 진우충에게 두 차례나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진우충은 전주성을 비울 수 없다는 핑계로 증원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양원은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왜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다. 16일 왜군은 본격적으로 총공격을 퍼부었다. 높은 누각을 만들어 그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조총 사격을 가하는 한편,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올라왔다. 연합군은 이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이 날 밤 왜군은 서문과 남문을 돌파하여 성 안으로 들어왔다. 북문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이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었으나 이들도 배후 공격을 받아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자 병사 이복남 이하 3천여 장병들은 화약고에 불을 질러 장렬히 전사하였고, 양원만이 50여기를 이끌고 탈출하였다. 한편, 전주성의 진우충은 남원에 구원병을 보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남원성의 함락 소식을 듣자 성을 버리고 달아남으로써 일본군은 남원을 거쳐 전주를 무혈로 점령하였다.

이 전투는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성을 지키다가 실패한 대표적 전투로 이 결과 호남지방의 일부가 계속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