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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금산(錦山)전투(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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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錦山)전투(1차)

시대 : 조선
시기 : 1592년(선조 25) 7월 9일~10일
전투지역 : 충남 금산군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7월 9일부터 10일까지 의병장 고경명이 지휘한 의병과 관군이 왜군과 금산에서 싸운 전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한성을 향하여 북상하면서 병력을 모아 전주에 이르렀을 때는 7,000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가 전주를 출발하여 여산에 이르러 왜군이 전라도로 침입해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고경명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왜군은 물리친 후 북상하기로 하였다. 이때 전라도방어사 곽영은 금산 서쪽의 진산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고경명은 곽영에게 금산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공격할 것임을 통보하고 협조를 부탁하여 동의를 얻어냈다.

한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휘하는 왜군은 7월 8일 전주로 진출하려다가 이치전투에서 권율의 조선군에게 크게 패하고 금산으로 철수하여 15,000여의 병력이 수성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고경명의 의병은 곽영의 관군과 함께 진산을 거쳐 7월 9일 금산에 도착하여 금산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왜군은 성 위에서 조총 사격으로 조선군의 접근을 저지하려고만 할 뿐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전날 이치전투에서 대패하여 병력 손실이 많아 미처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고경명은 금산성 서문을 공격 목표로 잡고 의병의 주력을 서문 공격에 투입하였다. 그때 고바야카와는 조선군의 관군이 허약한 것을 보고 동문으로 출진하여 관군을 공격하였다. 왜군의 선제공격을 받은 관군은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동요한 의병들도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왜군은 이 틈을 타서 일제히 공격하여왔고, 고경명은 끝까지 군대를 독려하며 대항하였으나 마침내 전사하였고 많은 의병과 관군이 희생을 당하였다. 이 전투에서 관군과 의병의 연합작전 실패로 비록 금산성 탈환에는 실패하였지만, 왜군의 전주 진출을 저지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