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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광교산(光敎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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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光敎山)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637년(인조 15) 1월 5일~6일
전투지역 : 경기도 용인시 광교산
전쟁상대국 : 청나라
상세내용

병자호란 때인 1637년(인조 15) 1월 5일부터 6일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조선군과 청군이 벌인 전투.

청군에 쫓겨 남한산성으로 피란한 인조는 전국 감사에게 통첩하여 근왕병을 모집하여 적에 대항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 전라감사 이시방은 병사 김준용과 함께 전라도 각 고을에서 모집한 근왕병 6,000여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향해 북상하였다. 북상 도중 김준룡은 선봉장으로서 병력 2,000명을 거느리고 먼저 진군하기로 하고 1월 4일 남한산성 남방 100리 지점의 광교산으로 진출하였다. 그는 이곳 능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군량과 화약 등 군수물자를 비축하고 항전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청군의 좌익군 일부를 지휘하던 양굴리는 이 정보를 탐지하고 5,000여의 병력으로 광교산을 공격하여왔다.

1월 5일부터 청군이 수차례에 걸쳐 공격해왔으나 조선군은 청군이 공격할 때는 총포로 집중 사격하고 청군이 퇴각할 때는 궁시병과 창검병이 그 배후를 가격하여 청군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이튿날 양굴리는 다시 전병력을 투입하여 공격해왔는데, 조선군은 이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저녁 무렵 청군의 일부가 조선군 동남쪽 진영을 돌파하고 진내로 돌입하였다. 광교산 북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준용은 급히 군사를 몰아 청군과 접전을 벌이던 중 조선군 포수가 청군 지휘관인 양굴리를 사살하였다. 양굴리가 사살되자 청군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조선군은 이 틈을 타서 일제히 반격을 가하여 청군을 격파하였다. 청군은 이 싸움에서 병력의 태반을 상실하고 패주하였으며, 청군이 퇴각한 후 김준용은 군사를 이끌고 수원 방면으로 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