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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경주(慶州)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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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592년(선조 25) 9월 8일
전투지역 : 경북 경주시
전쟁상대국 : 일본
관련유적 : 경주읍성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인 1592년 9월 8일 경상좌병사 박진이 왜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경주성을 탈환한 전투.

이에 앞서 박진은 8월 20일 경주성을 공격하다가 패배하고 안강의 본진에 돌아가 있었는데, 그는 재차 경주 탈환을 결의하고 새로운 무기 개발을 모색하였다. 이때 마침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였는데, 이것은 쇠조각과 화약을 섞어서 둥그렇게 만든 다음 표면을 쇠로 입힌 후 대완구포로 발사하면 5, 6백보 정도 날아가서 땅에 떨어졌다가 잠시 후에 폭발하는 것이었다. 박진은 이것을 비격진천뢰라 이름붙이고 이를 이용하여 경주성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9월 8일 해가 지자 박진은 선봉대 1,000여명으로 성을 포위하게 하고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에 접근하였다. 이때 성 안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 소속 왜군 수천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조선군의 야간공격을 알아차리고 조총을 쏘며 조선군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에 박진의 군대는 은밀히 성 밑에 접근하여 비격진천뢰 수발을 발사 적군을 폭사시켰고, 이에 놀란 왜군은 좌왕우왕하다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근 1만석의 군량을 버린 채 이튿날 울산 서생포 방면으로 퇴각하였으며, 마침내 경주성은 수복되었다. 그 뒤로 왜군은 비격진천뢰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 경주전투는 최초로 비격진천뢰라는 신무기를 사용하여 승리를 거둔 전투로, 이때 경주성을 탈환함으로써 영천과 경주간에 개설된 적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