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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강화성(江華城)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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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성(江華城)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866년(고종 3) 10월 14일~10월 16일
전투지역 : 강화도 갑곶진, 강화성
전쟁상대국 : 프랑스
관련유적 : 강화성
관련인물 : 강감찬(姜邯贊) 강순(康純)
상세내용

1866년 10월 14일에서 16일까지 3일간 강화부 강화성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프랑스군 사이의 전투.

프랑스군대는 조선의 천주교 탄압과 프랑스 신부 살해를 구실 삼아 강화도에 침입하였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각종 함선 7척과 600여 명의 해병대로 구성된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하여 한강 하구를 봉쇄하고 서울에 이르는 조운로를 차단함으로써 조선 조정에 압력을 가하고자 하였다.

로즈제독은 이튿날인 15일부터 강화도를 공략하기 위한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상륙부대 제1대 대장 도즈리 해군 중령은 1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진휼리(振恤里) 북쪽 야산을 경유하여 강화읍성의 동문 쪽으로 접근하였다. 강화성 동문을 사이에 두고 조선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으나, 무기에서 열세인 조선군은 심한 타격을 입고 군관 조무영과 다수의 병사가 전사한 가운데 전의를 상실하고 성 밖으로 탈출하고 말았다. 한편 프랑스군 정찰대 일부 병력이 강화성 남문 방면에 대한 우회 공격을 개시하자, 이곳에서도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으나 남문 수문장 이춘일(李春日)이 전사하면서 남문도 프랑스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강화 유수 이인기는 장령전(長寧殿)에 봉안하고 있던 숙종과 영조의 어진을 백련사(白蓮寺)로 옮기는 한편, 성내에 남아 있는 병력을 강화유수부 주변에 집중 배치하여 프랑스군이 강화성의 중앙부로 돌입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10월 16일 오전 8시 로즈제독은 강화성을 완전히 점령한다는 계획하에 상륙부대로 편성된 3개 대대 전병력을 이끌고 갑곶나루를 출발하여 일제히 강화성으로 진격하였다. 강화성의 조선군은 성을 사수한다는 결의를 가다듬고 병력을 동문과 남문에 집중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군이 남문으로 접근하자 이들 프랑스군이 최대한 근거리로 접근하도록 유인한 후, 남문 전방 10여 m 지점에 이르렀을 때 소총과 대포로 집중 공격을 가하였다. 이에 프랑스군은 성능이 우수한 대포로 남문 문루인 안파루에 집중 포격을 가하여 문루를 파괴하고 남문의 정면 돌파를 감행하였다.

프랑스군이 우세한 화력으로 집중 포격을 감행하자 화력에서 열세인 조선군은 전의를 상실한 채 강화성을 포기하고 서문으로 패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강화 유수 이인기도 고려산을 거쳐 강화도 서북단 해안지역인 송산(松山)으로 피신하였다. 이로써 조선의 수상 관문이며 한강 수로 입구인 강화성은 불과 한나절만에 프랑스군에게 점령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