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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충주산성(忠州山城)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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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산성(忠州山城)전투

    시대 : 고려
    시기 : 1253년(고종 40) 10월 10일~12월 8일
    전투지역 : 충북 충주시 충주산성
    전쟁상대국 : 몽고
    관련유적 : 충주산성
    상세내용

    고려 고종 40년(1253) 몽고군과 고려군이 충주산성에서 벌인 전투.

    1253년 7월 고려에 다시 침입한 몽고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7월 15일 서경에 도착한 후 이곳에서 부대를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어 진군하였다. 이때 몽고군 원수 예꾸(也窟)는 개경을 거쳐 충주로 진출하였다. 충주는 개경에서 영남에 이르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로, 주변에 충주산성 등 6개의 산성이 있었다.

    10월 10일 몽고군 원수 예꾸가 이끄는 몽고군이 충주에 도착하여 대공세를 시작하였다. 충주성에는 제1차 고려·몽고 전쟁 때 처인성에서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승장 김윤후가 방호별감이 되어 충주성을 지키고 있었다. 충주의 군민들은 이후 1개월여 동안 일치단결하여 몽고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충주성을 방어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의 원수 예꾸는 병이 들어 일부 병력을 이끌고 평주로 돌아갔고, 부장인 아무간과 홍복원이 충주성 공격을 지휘하였다.

    충주성에 대한 포위공격이 계속되자 성중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게 되었다. 김윤후는 성중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분발을 촉구한 후 ‘누구든지 힘을 다하여 싸우면 귀천의 차별 없이 벼슬을 주겠다’ 하면서 성중에 보관되어 있던 노비들의 노비문서를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몽고군으로부터 노획한 소·말을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에 사기가 오른 충주성의 주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싸웠으며, 몽고군은 기세가 꺾여 더 이상 공격하지 못했다.

    충주성 전투의 승리로 몽고군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상도 지역이 전화의 피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군에게 유리하게 반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여 몽고군이 고려와의 화의를 서두르고 철군을 단행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