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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정주성(定州城)전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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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定州城)전투(1)

시대 : 고려
시기 : 1104년(숙종 9) 2월~1107년(예종 2) 12월
전투지역 : 함북 정평군 정주성
전쟁상대국 : 여진
관련유적 : 천리장성
상세내용

1104년(숙종 9) 2월부터 1107년(예종 2) 12월 여진정벌전쟁을 전후하여 정주성에서 고려와 여진 사이에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

발해 멸망 후 한동안 분열되어 있던 여진은 11세기에 이르러 통일되어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우야소(烏雅束)는 1104년 1월 부장 스스환(石適歡)으로 하여금 고려의 영역인 정주성(함경남도 정평) 부근까지 육박하여 고려와의 일전을 감행하려 하였다. 고려에서는 임간·이위·김덕진 등을 지휘부로 하는 여진 정벌군을 편성하였다.

(1) 1차 전투 1104년 2월 고려군을 이끌고 정주성 밖으로 출격하여 여진 토벌에 나선 동북면병마사 임간은 서둘러 공격을 감행하다가 초전에서 대패하고 병력의 태반을 잃고 말았다. 여진군은 승세를 타고 고려군의 배후를 추격하여 정주 남쪽 선덕관(宣德關) 앞까지 진출하였으나, 척준경 등의 용전으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천리장성 이북으로 퇴각하였으며, 고려군은 그 틈을 타서 정주성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고려 조정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임간을 파직시키고 후임에 윤관을 임명하였다. 윤관은 1104년 3월 4일 정주성 북방의 천리장성 밖으로 진격하여 여진군을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정주성 전투에서 패전한 여진족은 천리장성 북방에 설치한 성책을 모두 철거하고 이 해 6월 화의를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고려와 여진은 강화를 맺고 각각 철군하였다.

(2) 2차 전투 고려는 1차 정주성 전투 이후 국방력 강화에 주력하면서 여진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윤관은 개경으로 귀환하여 기병으로 편성된 여진군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군단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여 별무반을 창설케 하였다. 이처럼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데 주력한 고려는 1107년(예종 2) 윤10월 20일 윤관과 오연총을 원정군의 원수와 부원수로 임명하여 여진정벌을 시작하였다. 윤관과 오연총은 총병력 17만에 이르는 삼군을 이끌고 개경을 떠나 12월 4일 정주 부근의 장춘역에 도착하였다.

윤관은 병마판관 최홍정과 황군상을 정주와 장주(長州)로 보내 여진의 추장들을 유인하여 4백여 명의 여진인을 죽임으로써 여진족의 조직적인 저항을 사전에 와해시킨 후, 12월 13일 정주로 집결하여 일제히 정주성 관문 정면의 여진군 진영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이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