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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절령(岊嶺)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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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령(岊嶺)전투

    시대 : 고려
    시기 : 1361년(공민왕 10) 11월 16일
    전투지역 : 황해도 절령
    상세내용

    고려 공민왕 10년(1361) 11월 16일 절령 방어선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홍건적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이 해 10월 20일 홍건적의 괴수 반성(潘誠)·사류(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 등이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삭주로 밀려들어왔다. 이어 11월 초에는 청천강을 건너 안주의 고려군 진영에 대한 기습공세를 가하였다. 고려군은 청천강 방어선을 상실하고 절령 방어선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령(자비령)은 황해도 황주와 서흥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로부터 개성에서 평양을 잇는 행정적·군사적 경계를 이루는 요충지였다. 고려 조정은 홍건적의 침입에 맞서 방어군을 안주까지 전진시키는 한편, 동지추밀원사 이여경을 절령으로 파견하여 목책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홍건적은 11월 16일 야음을 틈타 1만여 명의 병력을 고려군 진지 근처에 매복시킨 후 새벽에 정면으로 돌진하여 책문을 부수고 진 안으로 돌입하였다.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홍건적 1만여 명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고려군의 진내로 몰려 들어갔다. 고려군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어 전열이 마비되었고, 황급히 개경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절령전투에서의 승리로 홍건적은 절령 이남으로 남진을 계속하여 개경으로 진군하였다. 고려군은 금교역 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개경으로 퇴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