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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요동성(遼東城)전투

요동성(遼東城)전투

시대 : 고구려
시기 : 645년(보장왕 4) 4월~5월
전투지역 : 요동지역
전쟁상대국 : 당나라
관련유적 : 요동성
상세내용

645년 고구려와 당나라가 요동성에서 벌인 전투.

당의 태종은 640년대에 고창국 및 돌궐 등 중국 주변의 여러 세력들을 차례로 제압한 뒤, 점차 고구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다. 그러던 중 642년 10월 정변을 일으켜 집권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신라 침공을 중지하라는 당 태종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당에 대해 적대행위를 계속하자 당 태종은 644년 11월 국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세적(李世勣)으로 요동도행군대총관을 삼고 자신이 직접 원정에 나서는 제1차 고·당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육로군을 지휘한 이세적은 645년 4월 1일 통정진에서 요하를 건너 무순지역의 신성을 공격하였으나 점령에는 실패하고, 4월 15일부터 그대로 남진하여 신성과 요동성 사이에 있는 개모성(蓋牟城)을 공격하여 4월 26일 마침내 함락시켰다. 개모성을 함락한 이세적은 다시 서남진하여 요동성으로 진격, 당 태종의 본진과 합류하였다.

이세적이 이끄는 6만여의 당군은 4월 말 요동성 동북쪽 교외에 이르렀다. 이에, 고구려의 보장왕은 4만여 명의 보병과 기병을 급히 보내 요동성을 구원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군과 당군은 요동성 교외에서 일대 접전을 벌였는데, 처음에는 고구려군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태종과 이세적의 기습공격을 받아 1천여 명의 병력을 잃고 요동성 동남쪽 외곽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그러자 당 태종은 5월 10일 요동성 교외의 마수산(馬首山) 일대에 진영을 설치한 뒤, 이세적의 부대로 하여금 요동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세적의 부대는 온갖 무기를 동원하여 밤낮으로 요동성을 공격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요동성의 고구려군민들은 파괴된 성벽과 성곽에 누대를 만들기도 하고 틈을 메우기도 하면서 적의 침투를 막았다.

고구려군이 이처럼 결사항전으로 대항하자, 당군은 요동성 서남쪽의 성루를 비롯하여 성 안의 각종 방어시설들에 불을 질러 혼란한 틈을 이용, 성벽을 넘어와 치열한 백병전을 벌렸다. 이때 요동성 동남쪽 외곽에 진을 치고 있던 고구려의 증원부대도 여러 차례 당군의 차단선을 뚫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모두 당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실패하고, 요동성은 결국 5월 17일 당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로써 중국의 침입에 있어서 항상 방파제 역할을 하던 요동성은 당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