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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서안평(西安坪)전투

서안평(西安坪)전투

시대 : 고구려
시기 : 242년(동천왕 16)
전투지역 : 서안평
전쟁상대국 : 위나라
상세내용

242년 고구려 동천왕이 요동지역의 군사적 요충지인 서안평에서 중국 위나라와 벌인 전투.

3세기 초 고구려는 압록강 하류방면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북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요동·낙랑·대방의 연결을 차단시키려는 것이었는데, 당시 이 지역은 위가 지배권을 강화해갔으므로 양국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고구려의 통로 차단으로 낙랑·대방은 육로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해로를 이용하여 위와 연락을 유지하였다. 위는 낙랑·대방이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으로 육로교통을 차단당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접하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면서 고구려를 견제할 수 있는 대비책을 모색하였다. 244년 가을에 위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이끄는 1만여 명의 군사로 고구려를 공격한 것은 바로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관구검의 침공군 1만여 명은 현도에서 동북진하여 훈하 상류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때 동천왕은 고구려군 정예 보병과 기병 2만여 명을 출동시켜 비류수 상류지역에서 저지하도록 하였다. 양측 군대는 비류수 상류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고구려의 동천왕은 위군을 격파하고 3천여 명을 살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위 관구검군의 급습을 받아 국내성이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성에 진입한 관구검군은 약탈과 유린을 일삼다가 245년 5월에 관구검 전공 기념비를 세우고 유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