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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백암성(白巖城)전투

백암성(白巖城)전투

시대 : 고구려
시기 : 645년(보장왕 4) 5월
전투지역 : 요동 지역
전쟁상대국 : 당나라
관련유적 : 백암성
상세내용

645년 5월 고구려와 당이 백암성에서 벌인 전투.

644년 11월 당태종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고구려국왕을 시해한 것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형부상서 장량을 평양도행군대총관으로, 태자첨사좌위솔 이세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자신이 직접 원정에 나섰다. 이때, 육로군을 지휘한 이세적은 645년 4월 1일 통정진으로부터 요하를 건너 무순지역의 신성을 공격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남진하여 4월 26일 개모성을 함락하고 다시 당태종의 본진과 힘을 합하여 요동성을 함락한 뒤, 백암성으로 군대를 진격하였다.

5월 28일 백암성 외곽에 도착한 당 태종이 다음 날 선봉부대를 성 가까이 접근시켜 고구려군의 전력을 탐지하자, 백암성의 고구려군은 성벽에 기치와 창검을 높이 세우고 군세를 과시하였다. 고구려군은 강궁으로 널리 알려진 쇠뇌를 쏘아 당의 우위대장군 이사마(李思摩)를 말에서 굴러 떨어지게 하는 등 당군의 기선을 꺾었다.

백암성의 전력을 탐지한 당 태종은 요동성을 함락할 무렵 이미 항복의사를 밝힌 바 있었던 백암성의 성주 손벌음(孫伐音, 혹은 孫代音)이 약속과 달리 이처럼 항전해오자, “백암성을 점령하면 성중의 백성과 재물을 모조리 장병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백암성 서북쪽에 주둔하고 이세적의 부대로 하여금 백암성 서남쪽 정면에 주둔하게 하여, 양쪽에서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항복을 머뭇거리던 백암성 성주 손벌음은 6월 10일 마침내 당태종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성주의 항복으로 백암성에 있던 고구려인은 1만여명이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다. 그리고 백암성은 당의 행정구역에 편입되어 암주(巖州)로 개칭된 주변 일대의 치소가 되었고, 성주 손벌음은 암주자사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