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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치하야성(千早城) 전투

치하야성(千早城) 전투

* 시 기 : 1333년 윤2월~5월 9일
* 전투지역 : 일본 가와치(河內) 곤고산(金剛山) 치하야성
* 관련인물 :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 / 가마쿠라(鎌倉) 막부군


1333년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치하야성에서 가마쿠라 막부의 대군을 맞아 격퇴한 전투.

1332년 11월 모리요시(護良) 친왕이 막부타도를 위해 요시노(吉野)에서 거병하자,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이에 호응하여 치하야성을 구축하고 거병했다. 33년 1월 막부는 대군을 소집, 3대로 나누어 요시노와 치하야성에 보냈다. 2월 12일 막부군은 치하야성 앞에 있는 아카사카(赤坂)성을 공격, 1,800명의 사상자를 내는 격전 끝에, 윤 2월 1일 함락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요시노도 함락, 3대의 막부군은 치하야성 공격을 위해 집결했다. 『태평기』에 의하면 막부군 수백만. 구스노키군의 숫자는 알 수 없지만, 3년 후 미나토가와(港川) 전투에서 마사시게와 함께 사망한 숫자는 700여 명이었다.

치하야성은 곤고산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지맥의 앞부분에 솟은 봉우리에 있다. 표고는 670미터로, 주위는 깊이 250미터의 깊은 V자형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화강암이 풍화한 모래산으로 토질이 약하여 올라가기에 힘든 산이다. 성의 둘레는 약 4km이다.
농성전은 3개월 이상 계속되었는데, 그 사이 막부군은 수차에 걸쳐 대규모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성에서는 화살과 함께 큰 돌이나 큰 나무를 던져 막부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막부군이 방심하면 깃발을 빼앗아(중세에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임) 도발하고, 또 인형으로 적을 유인하여 공격하기도 했으며, 사다리나 다리를 놓으면 기름을 묻힌 장작과 횃불을 던져 그를 격퇴하는 등, 구스노키는 지리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지구전으로 끌고 갔다.

그 사이 막부타도파의 중핵인 고다이고 천황이 유배지 오키(隱岐)를 탈출하여, 지방의 무사를 이끌고 수도로 진격했다. 초조해진 막부는 4월 4일 빨리 성을 함락시키라는 호령을 발했다. 사력을 다한 막부군의 공격이었지만, 요시노에서 패한 모리요시군이 게릴라전을 전개, 치하야성 한 곳으로만 집중한 막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무기와 군량미 등을 탈취했다. 5월 9일 막부의 로쿠하라탄다이(六波羅)가 함락되자 포위군은 와해되었다.

최초의 전투 때 급사면에서 굴러 떨어져 죽고 다친 자의 숫자를 헤는 데만도 3일이 걸렸다고 할 정도로 막부군에서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 전투로 막부군의 이반을 유발, 가마쿠라 막부의 붕괴로 이어졌다. 지리를 철저하게 이용한 기발한 전법은 일본 전투사의 눈부신 한 페이지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치하야성은 일본 성곽의 효시라고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