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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임신(壬申)의 난

임신(壬申)의 난

* 시 기 : 672년 6월 22일~7월 23일
* 전투지역 : 오미(近江), 야마토(大和), 가와치(河內), 야마시로(山城)
* 관련인물 : 오오아마(大海人) 황자 / 오오토모(大友) 황자


672년 텐지(天智) 천황의 동생 오오아마 황자와 아들 오오토모 황자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내란.

671년 텐지 천황은 조정 내부에서 후계자로 여겨지던 동생 오오아마를 제쳐두고 아들 오오토모를 후계자로 삼을 방침을 굳혔다. 이에 오오아마는 10월에 오미를 떠나 요시노(吉野)로 물러났다. 12월에 텐지가 죽자, 조정에서는 오미에서 야마토의 아스카(飛鳥)에 이르는 곳곳에 감시를 두어 요시노의 동정을 살피는 등 감시체제를 강화하고, 또 천황릉을 수축한다는 명분으로 미노(美濃), 오와리(尾張)의 인부를 징발하였다. 이에 오오아마는 반란을 결의하게 되었다.

6월 22일 오오아마는 사인(舍人)을 자신의 식읍이 있는 미노로 보내 거병했다. 자신은 2일 후에 요시노를 탈출하여 이세(伊勢)로 갔는데, 행군 도중에 오미에서 탈출한 다른 황자들, 그리고 각지의 호족들이 합류하여 세력이 불어났다. 오오아마는 미노에 들어가 후와(不破), 스즈카(鈴鹿)의 두 관문을 장악하고 전투태세를 정비했다. 오오아마의 병력은 미노, 오와리, 미카와(三河) 등을 중심으로 한 동국(東國) 출신자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한편 오미의 오츠궁(大津宮)에 있던 오오토모는 동국, 야마토, 츠쿠시(築紫), 기비(吉備)에 사자를 보내 전국적으로 병력을 동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국으로 보낸 사자는 후와를 지키고 있던 오오아마 측에게 붙잡히고, 서국으로 보낸 사자도 지방관의 협력을 얻지 못했다. 오오아마는 공세를 개시하여 1대는 야마토로, 2대는 오미로 직접 진격시켰다. 오츠궁으로 진격한 군대는 이누카미가와(犬上川) 부근에서 오미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야스가와(野洲)에서 승리하여 대세를 장악했다. 비와호(琵琶湖)의 북쪽을 돌아 진격한 군대와 합류하여 동과 북에서 오츠궁을 포위하자, 7월 23일 오오토모는 자결했다.

반란군이었던 오오아마 측이 승리한 원인으로서는 거병 후 재빨리 동국으로 통하는 관문을 장악하여 국가적 군사동원을 저지한 것과, 텐지 이래 강력하게 추진했던 중앙집권화정책에 대한 지방호족세력의 반발을 들 수 있다. 반란을 통하여 즉위한 오오아마, 즉 텐무(天武) 천황은 전대 이래의 귀족세력을 억누르면서 중앙집권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