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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

* 시 기 : 1600년 9월 15일
* 전투지역 : 일본국 미노(美濃) 세키가하라(關ケ原)
* 관련인물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과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끄는 서군이 도요토미 정권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미노 세키가하라에서 벌인 전투.

이에 앞서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병사한 후에, 정권은 이에야스를 필두로 하는 5대로(大老)와 미츠나리를 필두로 하는 5봉행(奉行)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나 99년에 들어 5대로, 5봉행 내부의 대립이 점차 표면화되었다. 7월 우에스기 가게카츠(上杉景勝)는 자기 영지로 돌아가 성을 수축하고 도로를 보수하는 등 영내의 정비에 힘을 쏟았는데, 그것은 전쟁 준비로 받아들여졌다. 1600년 4월 이에야스는 가게카츠에게 이를 해명하기 위해 상경하라고 요구했다. 가게카츠가 이를 거부하자, 6월 18일 이에야스는 그를 토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이끌고 출진했다. 이는 미츠나리의 거병을 유도하기 위한 계략이었다고 한다.

세키가하라는 동서 4km, 남북 2km의 분지인데, 후와관(不破關)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중산도(中山道), 북국가도(北國街道), 이세가도(伊勢街道) 등의 간선도로가 지나가는 고래로부터의 교통의 요지이다.

미츠나리는 다른 4봉행과 짜고, 대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를 맹주로 하여 거병, 긴키(近畿) 지역을 장악하고 오와리(尾張), 미노(美濃)로 진출하려고 했다. 7월 24일 시모츠케(下野) 오야마(小山)에서 미츠나리의 거병 소식에 접한 이에야스는 회군, 9월 13일에 기후(岐阜)에 도착했다. 14일의 작전회의에서 동군의 주력은 미츠나리의 본성인 사와야마(佐和山)성을 공략하고 오사카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 정보를 탐지한 서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15일 밤 주력을 세키가하라로 보냈다. 오전 7시를 지나 동군 9만, 서군 8만이 전투를 개시했다. 전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지만, 미리 내응하기로 약속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가 배반하여 서군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오후 2시경 동군의 승리로 끝났다.

9월 15일의 전투의 경과를 보면, 서군 측에는 고바야카와의 배반과 시마즈(島津)군이 공격 요청을 받고도 전황을 방관하는 등 내부가 통일되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서군에 참가한 다이묘들을 개역, 감봉하고, 몰수지 620만석을 전봉(轉封)을 수반하면서 분여하여, 에도시대 다이묘 배치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이 전투로 이에야스는 권력을 수중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