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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단노우라(壇の浦) 전투

단노우라(壇の浦) 전투

* 시 기 : 1185년 3월 24일
* 전투지역 : 나가토(長門) 아카마가세키(赤間關) 단노우라
* 관련인물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經) / 헤이시(平氏)


1185년 3월 24일 나가토 아카마가세키 단노우라에서 있었던 겐지(源氏)와 헤이시의 최후의 결전.

1185년 2월 19일 요시츠네의 기습공격을 받은 헤이시는 1183년 7월 23일 수도를 방기한 이래의 거점인 시코쿠의 야시마(屋島)도 포기, 혼슈의 최서단 히코시마(彦島)를 근거지로 하여 간몬(關門)해협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다이라노 도모모리(平知盛)군과 합류하여 열세를 만회하려고 했다. 당시 북규슈에서는 미나모토노 노리요리(源範賴)가 헤이시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는데, 요시츠네는 이 퇴로의 차단이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는 사이에 헤이시와 결전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요시츠네는 야시마에서 나가토로 이동하는 도중에 세토내해 주변의 수군세력을 흡수하여, 초기에 1백 수십 척이던 병선이 840척으로 불어났다.
단노우라는 일본의 혼슈 서단에 위치하는 곳으로 북규슈와의 사이의 좁은 해역은 하루에도 4차례씩 조류가 바뀌는 난소이다. 조류의 최대 속도는 8~11노트라고 한다.

3월 24일 오전 500여 척의 헤이시군은 동으로 흐르는 해류를 타고 정박 중이던 겐지군에게 접근, 정오 무렵부터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헤이시측이 유리했지만, 전투 직후 300척이 배반하고 또 그들에 의해 작전계획(잡병을 태운 큰 배를 미끼로 하여 겐지가 그에 접근하면 지휘관과 정예가 작은 배에서 공격)이 알려지는 등, 전황은 결정적으로 겐지에게 유리하게 된다. 오후 3시경 조류가 동에서 서로 바뀌면서 겐지측은 역습에 나섰다. 그때 요시츠네는 당시의 전투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뱃사공 등의 비전투원을 죽이는 기습전법을 구사, 헤이시군은 큰 혼란에 빠져, 4시경 전투가 끝났다.
헤이시는 본디 총병력에서 열세인데다가, 안토쿠(安德) 천황 이하 궁정 멤버와 여관(女官) 등 상당수의 비전투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커다란 약점이 있었다. 여기에 내부의 배반과 상대방의 전투관행 위반까지 겹치면 헤이시에게 승리의 가능성은 없었다고 하겠다. 이 전투로 헤이시는 멸망하고 5년여에 걸친 겐지와 헤이시의 쟁란은 겐지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