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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大阪城)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정권 때 축성된 성곽.

천하의 정권을 장악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 이점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하고 축성을 명하게 된다.

이후 1614년 성의 외곽이 모두 매립되었으며, 1615년 여름에 벌어졌던 전투에서는 혼마루(本丸)가 붕괴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기의 오사카성을 흙으로 덮어 버리고 그 위에 자신의 오사카성을 건립하였다. 1622년 새롭게 배치계획이 이루어지고 천수대를 쌓아 1630년에 천수를 건립하였다.

오사카성은 여러 번 낙뢰로 인해 피해를 입는데 1660년 화약고와 1665년에는 천수, 그리고 1783년에는 정문 창고(오오테몬 다몬야구라 : 大手門多聞櫓)가 번개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 1868년 1월의 무진전쟁(戊辰戰爭)으로 오사카성은 화염에 휩싸인다. 1931년 현존하는 천수를 복원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기의 오사카성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기의 오사카성은 규모가 커진다. 석축에도 거석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성석에는 축성자의 가문 문장을 새긴 각인(刻印)이 많이 발견되는데 그 종류가 150종으로 15,000개나 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것은 1628년까지 10년간 각 지역의 권력자(다이묘 : 大名)를 중심으로 축조된 토목공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959년의 발굴조사에서 현존 오사카성의 지하 10m정도 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의 석축이 발견되었다.

축성지의 선택에 있어서 오사카성은 최대한 지세(地勢)를 방어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북쪽과 동쪽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은 바깥쪽으로 급경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할 경우 비교적 평탄한 남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최선책이 된다. 1615년 5월 오사카 여름전투는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남측 대지 일대에서 펼쳐진 대규모 전투였다. 동군(東軍)인 도쿠가와측 155,000명과 서군(西軍)인 도요토미측은 55,000명으로 합계 210,000명이라는 대군(大軍)이 격돌하여 사투(死鬪)를 벌인 끝에 서군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이 결과로 도쿠가와 가문의 지배체제가 확정된 것이다. 창고시설로서 화약류를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오사카성 서쪽구역(西の丸)에 있는 창고는 1685년 축조된 것으로 화재나 번개로 인한 화재 등으로부터 화약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창고이다. 또한 금이나 은 등의 보물과 재화를 수납하기 위한 창고도 오사카성 천수 남쪽에 있는 핵심구역(本丸)의 대지에 원래는 2동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동만 남아 있다. 그리고 땔감용 나무 등을 저장해 두는 창고(八角薪藏)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