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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료가쿠(五稜郭)

* 이 칭 : 가메다야쿠쇼(龜田役所)
* 시 대 : 1864년 준공
* 소재지 :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고료카쿠쵸(日本 北海道 函館市 五稜郭町)
* 규 모 : 주위 약 3.4km, 직경 약340m, 성곽높이 약 4.5m, 총면적 약17.9ha
* 관련전투 : 제1차 전투(1868년), 제2차 신정부군과의 전투(1869년)


에도막부가 직할로서 세운 최후의 성곽이자 일본 최대의 서양식 성곽.

1856년 10월 토목 관계자를 임명하여 1857년 5월부터 측량을 시작하고 11월 기공하였다.

초기의 계획은 경비가 비싸게 드는 석축이 아니라 공사비가 적게 드는 토축에 잔디를 입혀 붕괴를 막는 방법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역상 한냉지이기 때문에 땅이 얼고 눈이 녹을 때 여러 문제가 생겨 급하게 석축공법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석재를 하코다테산(箱館山)에서 안산암을 잘라내어 정밀하게 시공하였으나 7년간의 공사로 점차 자금이 부족하게 되어 후기 석축공사에는 강돌로 쌓을 정도가 되었다.

이 성을 조성하게 된 동기는 외국의 함선이 북해에 출몰하여 막부는 북쪽을 방어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를 지방정부(마츠마에한 : 松前藩)에 맡기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직접 건설하였다. 화력병기의 발달이 월등한 외국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곽의 건축기법은 일본 재래의 축성법과는 다르게 능보형(稜堡型 : 모서리가 튀어나온 성벽유형)의 서양식 축성법이 채택되었다. 별 모양의 평성(平城)이며 유럽의 축성이론을 도입하여 성벽에 근접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사각(死角)을 없앤 형태로 계획되었다. 남쪽 출입문 앞에는 삼각형의 보(半月堡)를 설치하였다. 발달한 화포에 대응하기 위해서 토축은 두껍게 축성하고 해자는 폭 30m 정도로 설치하였다.

석축공법은 일본의 기존 석축 가공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성내의 건축물은 천수(天守)나 야구라(櫓:창고)는 설치하지 않고 관청건물과 관사정도의 건물을 외부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 성에서 일어난 전투를 살펴보면 모두 두 차례의 전투가 있었다.

첫 번째 전투는 1868년에 일어난 신정부와 구 막부군과 사이의 전투이다. 1868년 5월 신정부는 하코다테부를 설치하고 관할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구 막부군 3,500명을 이끌고 10월에 고료가쿠를 공격하였다. 하코다테부 쪽의 병력은 1,000여명으로 저항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아오모리(靑森)로 후퇴하여 에노모토 다케아키군의 무혈 승리로 끝난다.

두 번째 전투는 1869년에 일어난 하코다테(箱館)전투로 막부군 최후의 저항지로서 고료가쿠가 이용되었다. 신정부군은 4월 8,000의 병력으로 고료우카쿠를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한다. 이에 에노모토다케아키가 이끄는 막부군은 5월18일 전원 투항하여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 때부터 ‘箱館(상관)’이 ‘函館(함관)’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유적은 석축만 남아 있을 뿐 이외의 건축물은 살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