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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성(名護屋城)

* 이 칭 : 히젠나고야성(肥前名護屋城)
* 시 대 : 1591년
* 소재지 : 일본 사가현 히가시마츠우라군 친제이쵸 (日本 佐賀縣 東松浦郡 鎭西町)
* 규 모 : 170,000㎡
* 지정사항 : 특별사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일본 측의 전진기지로 축성된 성.

임진왜란 때 침략거점을 확보할 목적으로 1591년 가을 가키조에성(垣添城)을 개수하여 대규모적인 축성을 하였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구로다 나가마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성곽배치를 계획하고 규슈의 지방권력자들이 토목공사와 건축공사에 참여하여 축성공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건축공사의 경우는 무려 20여 명의 다이묘(大名)들에 의해 시행되었다. 1592년 봄에 석축부분과 천수 및 핵심구역(本丸 : 혼마루)의 어전(御殿)등이 완성되고 임진왜란 침략의 제1군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선봉으로 나선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침략계획은 종말을 맞이하고 건물 대부분을 가라츠성(唐津城) 축성에 전용하게 되고 진소(陣所)로서의 기능도 잃게 된다. 정문인 오오테문(大手門)은 센다이성(仙台城)으로 이건되었다.

이 성은 평산성(平山城)으로 핵심구역(本丸:혼마루)을 성곽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으며 왼쪽으로 도는 와곽식(渦郭式) 배치계획을 하고 있다. 천수는 외관상 5층이지만 내부는 혈장(穴藏) 1개층과 석축 위로 6층으로 모두 7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제립식(梯立式:천수 바로 옆에 야구라(櫓)가 붙어있는 형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개월간에 걸쳐서 축성된 성으로 축성계획은 1591년 8월23일자 가토우 기요마사의 편지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히데요시는 1592년 3월 조선침략의 개전(開戰) 지시를 내린다.

창고시설로는 천수대의 석축 내부 밑에 돌로 만든 아나구라(穴藏) 창고(석장(石藏))를 설치하고 있다. 아나구라는 원래 땅속 또는 작은 구릉의 중간정도에 구멍을 파서 나무 또는 돌로 사방을 둘러치고 화재 등 비상시에 보물이나 그릇 류 등을 수납하는 용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