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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

심용

沈陜川鏞 踈財好義 風流自娛 一時之歌姬琴客酒徒詞朋 輻輳幷臻 歸之如市 日〃滿堂 凡長安宴遊 非請於公 則莫可辦也
時一都尉 遊狎鷗亭 不謀於沈公 盡招歌琴 大邀賓客 跌宕恣遊 名亭秋夜 月色暎波 興復不淺 忽聞江上簫聲寥亮 遙見一小艇 泛水而來 老翁頭戴華陽巾 身被鶴氅衣 手持白羽扇 皓髮飄〃 有兩小童 着靑衣 左右侍 橫吹玉簫 舟載雙鶴 翩〃而舞 分明是神仙中人也 笙歌自停 諸人依欄簇立 嘖〃稱羨 萬目注視江中 而席上虛無人 都尉憤其敗興 乘小艇就之 乃沈公也 相與一笑 都尉曰 「公壓倒勝遊矣」 盡歡而罷
時又一宰 除箕伯啓行 其仲兄爲首相 設餞宴于弘濟橋上以送之 都門外 車數十輛 人馬輧闐路上 皆嘖〃稱其福力曰 「棠棣之華 鄂不韡〃」 忽見自松林間 飛出一騎 那人身着縷緋紫茸裘 頭戴漆色蜀猫皮耳掩 手執一鞭 據鞍顧眄 風彩動人 美娥三四人 頭戴戰笠 身着短袖襖子 腰繫水綠藍纏帶 足穿起花紅紋繡雲鞋 雙隊作行而隨後 復有童子六人 靑衫紫帶 各執樂器 於馬上奏之 獵人臂鷹呼狗 走出林樾間 觀者如堵 咸曰 「是必沈陜川也」 見之果然 路人復咨嗟曰 「人生世間 如白駒過隙 固當窮心志之所樂 俄者餞宴 豈不盛哉 然自古功名多敗而少成 與其憂讒畏忌 氷炭胸中 曷若快心適意 豪爽自娛 無憂於身外者哉」 長安諸人 遂相與戱曰 「餞乎獵乎 寧獵無餞」 其歆艶可知
一日 沈公與歌客 李世春 琴客 金哲石 妓秋月梅月 桂蟾輩 會於草堂 琴歌永夕 公謂諸人曰 「汝輩欲觀西京乎」 皆曰 「有志未就」 沈公曰 「 平壤 自檀箕以來 五千年 繁華之場也 畵中江山 鏡裡樓臺 可謂國中第一 而吾亦未之見焉 吾聞箕伯設回甲宴於大同江上 道內諸倅咸集 且選名妓歌客 肉山酒海 先聲大播 將於某日開宴云 一擧足 則非但大踈暢 亦必多得纏頭之金帛 豈非謂揚州鶴乎」 諸人雀躍相賀 遂治裝啓行 稱以往楓嶽 藏踪跡 以迂路 潛入箕城 於外城靜僻處住着
其翌日 乃宴日也 遂貰小艇一隻 上設靑布帳 左右垂緗簾 中藏妓客管絃 隱舟於綾波 浮碧之際 俄而鼓樂喧天 舟楫蔽江 巡相高坐樓船上 諸守宰畢集 大張宴席 淸歌妙舞 影動水波 城頭江岸 人山人海
沈公乃搖櫓前進 停舟於相望之地 彼船劍舞 則此船劍舞 彼船唱歌 則此船唱歌 有若效嚬之狀 彼船上諸人 莫不怪之 發送飛船 使之捉來 沈公促櫓而走 不知去處 飛船莫能追 回去復搖櫓而進 又如之 如是者數三 於是 甚怪之曰 「吾遙見 其船中 則劒光閃電 歌聲戞雲 決非遐土尋常之人 且緗簾中 被鶴氅衣 戴華陽巾 手揮羽扇之一老翁 兀然端坐 喧笑自若 豈非異人乎」
遂暗令於船將 以十餘小船 一齊圍住 捉曳而來泊 至大船頭 沈公捲簾大笑 巡相素有親誼 見則顚倒驚喜 槩問其踈暢之意 盖船中諸宰幕賓及巡相子婿弟姪 俱是洛陽人也 見洛陽之妓樂 莫不歡喜 亦多知面之人 相與握手敍懷
於是 妓歌琴客 盡其平生之技藝 終日遊行 西路之歌舞粉黛 頓無顔色 當日席上 巡相以千金贈京妓 諸宰又隨力贈之 幾至萬金 沈公迭宕 一旬而還 至今爲風流美譚
及沈公之逝後 葬於 坡州之柴谷 歌琴之伴 相與泣下曰 「吾輩平生爲沈公風流中人知己也 知音也 歌歇琴殘 吾將何之」 會葬于柴谷 一場歌 一場琴 遂痛哭于墳前 各散其家 惟桂蟾 守墓不去 白頭絲〃 方瞳黯〃 向人說道如此
합천(陜川)심용(沈鏞)은 재물은 소홀히 여기고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풍류(風流)를 스스로 즐겼다. 한 때의 가희(歌姬), 금객(琴客), 주도(酒徒), 사붕(詞朋)들이 그 집에 폭주하여 이르는 것이 마치 저자에 사람 모이듯 하였다. 사람들이 날마다 집안에 가득하였고, 장안의 모든 잔치와 놀이는 공에게 청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 한 도위(都尉)가 압구정(狎鷗亭)에 놀러갔는데, 심공에게 상의하지 않고 가희와 금객을 모두 불러 많은 손님들을 맞이한 후 질탕하게 마음껏 놀았다. 풍취있는 정자의 가을밤, 달빛이 물결에 비치니 흥취가 크게 일었다. 그 때 갑자기 강 위에서 퉁소 소리가 요량(寥亮)하게 들려왔다. 멀리 바라보니 한 작은 배가 물에 떠 오고 있었는데,노옹(老翁)이 머리에는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몸에는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을 들고서 백발을 표표하게 날리고 있었으며, 청의(靑衣)를 입은 동자들이 좌우에서 노옹을 모시고 옥소(玉簫)를 불고 있었고, 배 위에서는 한쌍의 학이 날개를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었으니, 이는 분명 신선(神仙)이었다.
생가(笙歌)가 그치자 많은 사람들이 난간에 빽빽히 서서 혀를 차며 부러워하였다. 모든 사람의 눈이 강 가운데를 주시하게 되니 연회석상(席上)이 텅 비어 한 사람도 없었다. 도위가 흥이 깨진 것을 분하게 여겨 작은 배를 타고 나가보니 그는 바로 심공인지라 서로 더불어 한바탕 웃었다. 도위가 말하였다.
“공은 승유(勝遊)를 압도하고 있구료!”
실컷 놀고서 놀이를 마쳤다.
그 때 또 한 재상이 평양감사에 제수되어 떠나는데, 그의 가운데 형이 수상이었는지라 홍제교(弘濟橋) 위에서 전별연(餞別宴)을 베풀어 전송하였다. 성문 밖에도 수레가 수 십 량(輛) 있었고 사람과 말과 수레등이 길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이 모두 혀를 차며 그의 복력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당체(棠棣)꽃은 꽃송이가 활짝 피지 않았는가!”
이 때 갑자기 소나무 숲 속에서 말 탄 사람이 나는 듯이 나왔다. 몸에는 붉은 자주색 털로 짠 갖옷을 입고, 머리에는 검은색 촉묘피(蜀猫皮)를 써 귀를 가리고, 손에는 말채찍을 들고 안장에 기대어 돌아보았는데 그 풍채는 사람을 동요시킬 만 하였다. 미녀 서너 명이 머리에는 전립(戰笠)을 쓰고 몸에는 소매가 짧은 웃옷을 입고 허리에는 물빛남색 전대(纏帶)를 매고 발에는 붉은 꽃이 피어나는 무늬를 넣은 운혜(雲鞋)를 신고 양 대열을 이루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뒤에는 다시 동자(童子) 여섯 사람이 청색 적삼에 자주 빛 허리띠를 두른 채 각각 악기를 들고 말 위에서 연주하였다. 사냥꾼이 팔뚝에 독수리를 앉히고 개들에게 소리치며 수풀 속에서 달려 나오자 구경꾼들이 담처럼 둘러서서 모두 말하였다.
“저 사람은 필시 심합천(沈陜川)일 것이다!”
바라보니 과연 심공이었다. 길가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간의 인생이란 백구과극(白駒過隙)과 같으니 진실로 마음과 뜻이 즐기는 것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조금 전의 전별연이 어찌 성대하지 않겠는가마는 그러나 자고로 공명(功名)은 실패함이 많고 성사되는 것은 적은 법이다. 참소를 근심하고 꺼림을 두려워하여 가슴속에 얼음과 숯불이 상반하는 것 같은 것이 마음과 생각을쾌적하게 하고, 호탕함과 상쾌함을 스스로 즐기면서 자신의 몸 이외에는 근심하지 않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장안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희롱하며 “전별할까? 사냥할까? 사냥하지 전별은 하지 않으리!”라고 말하였으니 그흠염(歆艶)함을 가히 알 수 있겠다.
하루는 심공이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금객(琴客) 김철석(金哲石), 기생 추월(秋月) 매월(梅月) 계섬(桂蟾) 등과 초당(草堂)에서 만나 가야금 타고 노래 부르며 밤을 지냈다. 공이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서경(西京)을 가보고 싶지 않니?”
모두 말하였다.
“가보고 싶은 생각이야 있었지만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심공이 말하였다.
“평양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래 5,000년 동안 번화했던 곳이다. 그림 같은 강산과 거울 같이 맑은 물에 비친 정자와 누각이 우리 나라 제일이라고 이를 만 한데 나 또한 아직 가보지 못했다. 내가 들으니 평양 감사가 대동강(大洞江)에서 회갑연을 열어 도내 수령들을 모두 모으고 또 이름난 기생과 가객을 뽑아 고기가 산을 이루고 술이 바다를 이루리라는 소문이 크게 퍼졌는데, 장차 모일에 잔치가 열린다고 하더라. 일단 그 곳에 가기만 하면 통쾌하게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전두(纏頭)로 주는 돈과 비단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양주의 학(揚州之鶴)이라 이를만 하지않겠는가?”
사람들은 껑충껑충 뛰며 서로 축하하였다.
드디어 행장을 꾸려 출발하였는데, 풍악산(楓嶽山)에 간다고 칭탁하고서 자취를 감춰 우회로로 몰래 평양성에 들어간 뒤 평양 외성에 있는 조용하고 외진 곳에 머물렀다.
그 다음 날이 잔치날이었다. 작은 배 한척을세내어 그 위에 청색 장막을 설치하고 좌우에는 담황색 주렴을 늘어뜨린 뒤 그 안에 기생과 가객과 관현악기를 감추고 배를 비단 파도에 감추었다. 배가 부벽루(浮碧樓)에 갈 즈음 이윽고 북을 치고 노래하여 하늘을 떠들썩하게 하며 배를 저어 온 강을 뒤덮었다.
평양 감사는 망루가 있는 배 위에 높이 앉아 있었고 수령들도 모두 다 모여 큰 잔치가 벌어졌다. 맑은 노래와 아름다운 춤이 물결에 비치며 요동하였고 성 머리의 강 언덕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심공은 노를 저어 나아가 서로 바라다 보일 만한 곳에서 배를 멈추었다. 저쪽 배에서 검무(劍舞)를 하면 이쪽 배에서도 검무를 하고, 저쪽 배에서 노래 부르면 이쪽 배에서도 노래를 불러 마치 효빈(效嚬)하는 듯한 형상을 지으니 저쪽 배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몹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비선(飛船)을 내보내 잡아오게 하니, 심공이 노를 급히 저어 달아나는지라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선이 더 이상 쫒아가지 못하고 돌아가면, 다시 노를 저어 나왔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차례 하니 평양 감사가 매우 괴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내가 그배 안을 멀리서 바라보건대, 검의 광채가 번득이고 노래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니 이는 결단코 하토(遐土)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로다. 또 담황색 주렴 안에는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화양건을 쓰고 손에 깃털부채를 들고 부치는 한 노옹이 똑바로 단정하게 앉아 자약하게 웃고 떠들고 있으니 이인(異人)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선장에게 몰래 명령을 내려 십 여 척의 작은 배로 일제히 그 배를 포위하여 붙잡아 끌어오게 하였다. 뱃머리에 이르자 심공이 주렴을 걷고 크게 웃었다.
평양 감사는 원래 심공과 친한 우의가 있었는지라 심공을 보자 한편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 기쁘기도 하여 심공이 즐겼던 뜻에 대해 대략 물었다. 배 가운데 있는 여러 수령과 손님과 감사의 자제, 사위, 조카들은 모두 한양 사람인지라 한양 기생과 음악을 보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또 익히 알았던 사람들이 많아 서로 더불어 악수하고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나서 가기(歌妓)와 금객들이 평생의 기예를 다 베풀어 종일토록 놀았으니 서경의 가무하는 기녀들이 모두 얼굴 빛을 잃었다.
그 날 연회석에서 감사는 천금(千金)을 한양 기생에게 주었고, 다른 수령들도 자신의 능력껏 돈을 주니, 거의 만금(萬金)에 이르렀다. 심공은 질탕하게 즐기다 열흘 만에 집에 돌아왔으니,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풍류미담(風流美譚)으로 전하고 있다.
심공이 죽자 파주(坡州)의 시곡(柴谷)에 장사하였는데, 가객과 금객 무리들이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우리들은 평생 동안 심공을 위해 왔소. 공은 풍류를 즐기는 사람 중에서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었고 또 소리를 아는 사람이었소. 노래가 끊기고 가야금 소리가 쇠잔해져 버렸으니 우리들은 장차 어찌 할꼬!”
시곡에 장사함에 한바탕 노래하고 가야금을 타더니 마침내 무덤 앞에서 통곡한 뒤,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져 갔는데, 오직 계섬 만이 무덤을 지키며 가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털이 모두 백발이 되고 눈이 어두워질 때까지 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