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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관

박효관

雲崖朴先生 平生善歌 名聞當世 每於水流花開之夜 月明風淸之辰 供金樽 按檀板 喉轉声彂 瀏亮淸越 不覚飛樑塵而渴淤雲 雖古之龜年善才 無以加焉 以故敎坊句欄 風流才子 冶遊士女 莫不推重之 不名與字而稱朴先生 時則有友臺某某諸老人 亦皆當時聞人豪傑之士也 結稧曰老人稧 又有豪華富貴 及遺逸風騷之人 結稧曰昇平稧 惟歡誤讌樂是事而先生實主盟焉 余酷好是道 竊慕先生之風 虛心相隨 將四十年于兹 噫吾儕生逢聖世 共躋壽域 而上有國太公石坡大老 躬攝萬機 風動四方 禮樂法度 燦然更張 而至音樂律呂之事 無不精通 繼而又石尙書 尤皦如也 豈非千載一時也歟 余不禁鼓舞作興之思 不避猥越 與碧江金允錫君仲相確 迺作新飜數十闋 歌詠盛德 以寓摹天繪日之誠 又輯後漫詠數百闋 作為一篇 謹以就質于先生 存削之潤色之然後 成完璧 是於名姬賢伶 被之管絃 競唱迭和 亦一代勝事也 爰錄于曲譜之末 使後來同志之人 咸知吾儕之生斯世而有斯樂也 先生名孝寬字景華號雲崖國太公所賜號也
上之十八年 庚辰月 口圃東人 安玟英 字聖武 初字荊寶 號周翁 序

운애 박선생은 평생 노래를 잘하여 당세에 이름을 날렸다. 매양 물 흐르고 꽃 피는 밤이나 달 밝고 바람 맑은 때이면 금준을 받들고 단판을 두드리며 목을 굴려 소리를 하였는데 유량하고 청월하여 들보 위의 먼지가 날고가던 구름이 멈추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옛 이구년의 뛰어난 재주라도 여기에 더할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교방과 구란의 풍류재사와 야유사녀들이 그를 추중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이름과 자를 부르지 않고 박선생이라 칭하였다. 이때 곧 우대에 모모의 여러 노인들이 있었는데 역시 모두 당시의 이름 있는 호걸지사들인지라, 계를 맺어 ‘노인계’라 하였다. 또 호화부귀자와 유일풍소인들이 있어 계를 맺고는 ‘승평계’라 하였는데 오직 연락을 즐김이 일이었으니 선생이 실로 그 맹주였다. 내가 이 도를 매우 좋아하여 외람되이 선생의 풍모를 우러르며 허심으로 보고 따름이 이에 거의 사십년이다. 아아! 우리들이 성세에 나서 만나 함께 수역에 올랐으니 위로는 국태공 석파대로가 있어 만기를 모소 관장하며 사방을 감화시켜 예악과 법도가 찬연히 경장하였고 음악과 율려의 일에 이르러서는 정통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이어서 우석상서는 더욱 교여하였으니 어찌 천년만의 한 좋은 시절이 아니었겠는가? [금옥총부] 안민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