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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선

광한선

戊申/掌樂院員書奚琴妓廣寒仙等四人以啓, 傳曰: “近日雨澤適給, 故進小宴于兩殿, 其令廣寒仙等, 持奚琴以入。” 俄傳曰: “善伽倻琴、牙箏妓, 各一人亦速選入。” 一日王酒酣, 私語任崇載曰: “予欲私廣寒仙, 恐外間知也。” 崇載曰: “世祖朝有四妓, 無時出入宮掖。 選妓出入, 外人何知之?” 王意始決, 遂幸廣寒仙。 先是, 王以微行, 率宦者五六人, 各持杖猝入淨業院, 毆黜尼僧老醜者, 只留年少有姿色七八人淫之。 此, 王肆慾之始

장악원(掌樂院) 관원이 해금 타는 기생 광한선(廣寒仙) 등 4인을 적어서 아뢰니, 전교하기를,

“요사이 비가 마침 흡족하게 왔으므로 작은 잔치를 양전께 드리는 것이니, 광한선 등에게 해금을 가지고 들어오게 하라.”

하고, 좀 있다가 전교하기를,

“가야금과 아쟁(牙箏) 잘 타는 기생을 한 명씩 또 빨리 뽑아 들이라.”

하였다. 하루는 왕이 술이 취하여 사사로이 임숭재(任崇載)에게 말하기를,

“내가 광한선을 가까이하고 싶은데 외부에서 알까 두렵다.”

하니, 숭재가 말하기를,

“세조 때에도 네 기생이 있어 때없이 궁중에 출입하였습니다. 기생을 뽑아 출입시키는 것을 외부에서 어찌 알겠습니까?”

하니, 왕의 생각이 비로소 결정되어 드디어 광한선을 괴이게 되었다.

이에 앞서 왕이 미행하여 환자(宦者) 5, 6인에게 몽둥이를 들려 정업원(淨業院)으로 달려들어가 늙고 추한 여중을 내쫓고, 나이 젊은 아름다운 자 7, 8인만 남기어 음행하니, 이것이 왕이 색욕을 마음대로 한 시초이다.(연산군일기 9년 6월 13일)


兩大妃宴慰王于昌慶宮內殿, 命饋政丞、司憲府、承政院于南賓廳, 以女妓耐寒梅、廣寒仙爲題, 各製詩以進。 自健等曰: “大抵詩詠, 非帝王所尙, 況以娼兒之名爲題乎? 若書之於史, 後世以爲何如?” 遂不製進, 承旨以下皆製進。 傳于政丞及大司憲曰: “金勘賢而有學術, 欲加資憲階, 授成均館知事, 於卿等意何如? 如此等事, 小人聞之, 必曰: ‘大君在勘家, 故如是。’ 然予意以謂, 近來如勘者難得。” 成俊等啓: “果如上敎。 雖超資授職, 未爲過也。” 自健啓: “其爲人也果賢矣。 但以嘉善, 例授同知。 今若超資授之, 則恐爵賞越次。” 下虎皮七張, 賜政丞、承旨、大司憲等。 有頃, 王大醉, 出坐文政殿庭, 召李克均, 又召成俊、南袞、李希輔、成世純、許輯、權鈞, 又召李繼孟、李陌, 又召李昌臣、韓亨允、李顆以入, 張樂賜酒, 令韓亨允製詩。 王曰: “汝詩惡。” 亨允對曰: “臣詩不惡。” 俊曰: “臣之子尤能詩。” 王曰: “仲溫、景溫歟?” 王自擊鼓、歌舞, 令群妓和之。 又令入侍諸臣, 或歌或舞, 或手脫其帽, 捽髮而戲辱之, 極褻慢, 無復有君臣之禮。 酒闌, 王入內, 亨允、希輔扶侍, 至內庭地坐, 王引廣寒仙坐其側, 奏奚琴, 呼亨允爲參判曰: “以汝爲吏曹參判。” 遂脫靴賜之。 召南袞講《春秋》, 王自讀衞人伐鄭傳, 至毁其宗廟、社稷曰滅, 愀然不樂曰: “歡飮之夕, 不須講褒貶之書。” 遂起入, 夜已四皷

두 대비가 창경궁(昌慶宮) 내전에서 왕에게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고, 정승과 사헌부·승정원을 남빈청(南賓廳)에서 대접하면서, 기생 내한매(耐寒梅)·광한선(廣寒仙)을 글제로 하여 각각 시를 지어 바치게 하니, 이자건 등이 아뢰기를,

“대체로 시를 읊는 것은 제왕이 숭상할 일이 아닌데, 더구나 창녀의 이름으로 글제를 하겠습니까? 만일 사책에 쓴다면 후세가 어떻다고 하겠습니까?”

하고, 끝내 지어 바치지 아니하였고, 승지 이하의 관원들은 모두 지어 바쳤다. 정승 및 대사헌에게 전교하기를,

“김감(金勘)은 어질고 학문이 있으니, 자헌(資憲)으로 품계(品階)를 올려 성균관 지사(成均館知事)를 제수하고 싶은데, 경 등의 뜻은 어떠한가? 이런 일들을 소인들이 들으면 반드시 ‘대군이 김감의 집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근래에 김감 같은 사람은 얻기 어렵다고 여긴다.”

하니, 성준(成俊) 등이 아뢰기를,

“과연 성상의 전교와 같습니다. 자품(資品)을 뛰어올려 직을 제수하더라도 지나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이자건은 아뢰기를,

“그의 인품은 과연 어짊니다. 다만 가선(嘉善)으로 동지(同知)를 제수하는 것이 준례인데, 지금 자급을 뛰어 제수한다면, 작(爵)과 상이 차례를 건너뛰게 될까 염려됩니다.”

하였다. 호피(虎皮) 7장을 내려 정승·승지·대사헌 들에게 하사하였다. 좀 있다가 왕이 크게 취하여 문정전(文政殿) 뜰에 나앉아 이극균(李克均)을 부르고 또 성준·남곤(南袞)·이희보(李希輔)·성세순(成世純)·허집(許諿)·권균(權鈞)을 부르고, 또 이계맹(李繼孟)·이맥(李陌)을 부르고, 또 이창신(李昌臣)·한형윤(韓亨允)·이과(李顆)를 불러들여 풍악을 벌이고 술을 하사하였다. 한형윤에게 시를 짓게 하고, 왕이 이르기를,

“네 시가 악하다.”

하니, 한형윤이 아뢰기를,

“신의 시가 악하지 않습니다.”

하고, 성준은 아뢰기를,

“신의 자식은 더욱 시에 능합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성중온(成仲溫)·성경온(成景溫)인가?”

하였다.

왕이 스스로 북을 쳐 노래하고 춤추며 여러 기생들에게 화답하게 하였다. 모신 여러 신하들을 혹은 노래하고 혹은 춤추게 하며, 더러는 손으로 사모를 벗겨 머리털을 움켜 잡고 희롱하며 욕보이기를 극히 무례하게 하여 군신간의 예절이 다시 없었다. 술이 한창일 적 왕이 안으로 들어가므로 형윤과 희보가 부축하여 모시고 안뜰로 들어가 앉았는데, 왕이 광한선(廣寒仙)을 끌어당겨 곁에 앉히고 해금(奚琴)을 타게 하며 형윤을 참판(參判)이라고 불러 이르기를,

“너를 이조 참판으로 삼는다.”

하고, 드디어 신을 벗어 하사하였다. 남곤을 불러 《춘추(春秋)》를 강하게 하고, 왕이 스스로 위(衛)나라 사람이 정(鄭)나라를 쳤다는 대문의 전(傳)4176) 을 읽다가, 그 종묘와 사직을 훼파(毁破)한 것을 멸(滅)이라 한다.’는 대문에 이르러, 추연(愀然)히 즐겁지 않은 기색을 하며 이르기를,

“즐겁게 술 마시는 밤에는 포폄(褒貶)한 글을 강할 것이 아니다.”

하고, 그만 일어나 들어갔는데, 밤이 이미 4경(更)이었다.

연산군일기 9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