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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대

황세대

戊子/上親行秋享大祭。 禮畢, 敎曰: “今年適壬年, 而先朝春享, 在壬午二月二日, 春秋雖不同, 而日偶相符, 其亦異矣。” 遂製下七言一絶, 命刊揭于齋室。 其起句曰:

壬午以來四十年, 追蹤古事社壇前。

令諸臣賡進。 初上以弼善李延德能知音律, 使釐正雅樂, 及社壇奏樂, 簫聲甚微, 且不中律。 上問延德曰: “十二律, 各自有宮聲耶?” 延德曰: “然矣。 如宗廟樂用黃鐘宮, 社稷樂用林鐘宮, 其中各有十二律, 是隔八相生之義也。” 上曰: “樂者, 所以感神祇, 而今之雅樂如此, 宜飭其慢。” 遂命重推延德, 更令肄習。 樂院提調閔應洙曰: “壬辰以後, 樂器崩亡, 今之聲律, 壞盡無餘。 頃年樂工黃世大入去北京, 學得笙簧以來, 今番使行亦令入送, 學來宜矣。” 上從之。


임금이 친히 추향 대제(秋享大祭)를 지냈다. 예(禮)를 마치자, 하교하기를,

“올해는 마침 임술년인데, 선조(先朝)의 춘향이 임오년 2월 2일에 있었으니, 봄과 가을의 계절은 비록 같지 않지만, 날짜가 우연히 꼭 부합됨은 그 또한 이상한 일이다.”

하고, 드디어 7언 절구(七言節句) 1수를 짓고 새겨서 재실(齋室)에 걸어 두라고 명하였다. 그 기구(起句)에 이르기를,

“임오년 뒤 40년 만에

옛일 자취 따라 사단(社壇) 앞에 이르렀다.”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에게 갱진(賡進)하게 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필선(弼善) 이연덕(李延德)이 음률(音律)을 잘 안다 하여 아악(雅樂)을 이정(釐正)하게 했는데, 사단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에 소(簫)의 소리가 몹시 작고 또 율(律)에 맞지 않았다. 임금이 이연덕에게 묻기를,

“12율(律)에는 각자 궁성(宮聲)이 있는가?”

하니, 이연덕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종묘악(宗廟樂)의 경우에는 황종궁(黃鍾宮)을 쓰고 사직악(社稷樂)의 경우에는 임종궁(林鍾宮)을 쓰는데, 그 가운데 각각 12율이 있으니, 이것이 8율을 사이에 두고 상생(相生)하는 뜻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음악이란 신명(神明)을 감동시키는 것인데 지금 아악이 이와 같으니, 그 태만함을 신칙함이 마땅하다.”

하고, 드디어 이연덕을 종중 추고(從重推考)하고 다시 익도록 명하였다. 악원 제조(樂院提調) 민응수(閔應洙)가 말하기를,

“임진년10052) 이후로 악기(樂器)가 망가지고 없어져 지금의 성률(聲律)은 거의 다 훼손되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지나간 해에 악공(樂工) 황세대(黃世大)가 북경(北京)에 들어가 생황(笙簧)을 배워 가지고 왔으니, 이번의 사행(使行)에도 또한 들여보내어 배워 오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영조실록 18년 8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