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세조

세조

九月, 世宗命世祖, 與安平大君瑢、臨瀛大君璆學樂。 瑢性好華麗, 璆素曉音律, 故皆樂學焉。 世祖方志弓馬, 日與武人輩角力, 無能及者, 文宗稱爲英健。 及聞世宗彈琴大悅, 乃始學。 一日世宗命與瑢、璆皷鄕琴, 世祖不學, 而瑢不能及, 世宗與文宗大笑。 又世祖嘗鼓伽倻琴, 世宗歎曰: “晋平之氣象也, 何事不能成哉?” 又曰: “晋平若鼓琵琶, 則能令衰氣更興。” 世祖又嘗吹笛, 在座諸宗親莫不感焉, 有鶴來舞庭中, 錦城大君瑜年方幼, 見之忽起對舞。 嘗於月夜, 世祖敎伶人許吾笛界面調, 【羽調俗謂之界面調。】 聞者莫不哀傷。 瑢謂世祖曰: “夫樂者, 貴哀而不傷, 兄何用界面調也?” 世祖曰: “昔陳後主以《玉樹後庭花》亡, 然唐太宗亦聽之。 且子其能止杜鵑聲乎?” 世宗又謂文宗曰: “知樂者, 我國中獨晋平耳, 前後所未有者也。” 或問世祖樂之極功, 世祖曰: “靜能引、弱勝强、卑莫犯、保太極、蘊至道、運造化, 樂之功也。”


9월에 세종이 세조에게 명하여 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와 더불어 음악(音樂)을 배우도록 하였다. 용은 그 성품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였고, 구는 본래 음률(音律)에 밝았기 때문에 모두 즐겨 배웠다. 그러나 세조는 바야흐로 궁마(弓馬)에 뜻을 두고 날로 무인(武人)의 무리와 더불어 힘을 겨루니, 능히 따를 만한 자가 없으므로 문종(文宗)이 그의 영건(英健)됨을 칭찬하였다. 세종이 거문고를 탄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배우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안평 대군 이용·임영 대군 이구와 더불어 향금(鄕琴)을 타라고 명하였는데, 세조는 배우지 않았으나 안평 대군 용이 능히 따라가지 못하니 세종과 문종이 크게 웃었다. 또 세조가 일찍이 가야금(伽倻琴)을 타니 세종이 감탄하여 이르기를,

“진평 대군의 기상(氣象)으로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진평 대군이 만약 비파(琵琶)를 탄다면, 능히 쇠약한 기운도 다시 일게 할 것이다.”

하였다. 세조가 또 일찍이 피리[笛]를 부니 자리에 있던 모든 종친(宗親)들이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학(鶴)이 날아와 뜰 가운데에서 춤을 추니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의 나이가 바야흐로 어렸는데도 이를 보고 홀연히 일어나 학과 마주서서 춤을 추었다. 일찍이 달밤에 세조가 영인(伶人) 허오(許吾)에게 지시하여 피리로 계면조(界面調)【우조(羽調)를 세속에서는 계면조(界面調)7) 라 이른다.】를 불게 하였더니, 이를 듣고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용(瑢)이 세조에게 이르기를,

“대개 악(樂)이란 애련(哀憐)하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을 귀히 여기는데, 형(兄)은 어찌 계면조를 씁니까?”

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옛날 진(陳)나라 후주(後主)8) 가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9) 때문에 망하였지만, 당(唐)나라 태종(太宗)도 또한 이 곡을 들었다. 또 그대는 능히 두견(杜鵑)의 소리를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세종이 또 문종에게 이르기를,

“악(樂)을 아는 자는 우리 나라에서 오로지 진평 대군(晉平大君)뿐이니, 이는 전후(前後)에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다. 혹자가 세조에게 악의 궁극적인 공효(功效)를 물으니, 세조는 말하기를,

“고요하면서도 능히 당겨서 끌고, 약하면서도 능히 강한 것을 이기고, 낮아도 범하지 못하며, 태극(太極)을 보유하고 지도(至道)를 함축하며 조화(造化)를 운용(運用)하는 것이 곧 악(樂)의 공효이다.”

하였다.

세조실록 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