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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이정은

義禁府啓: “洪裕孫供云: ‘去壬寅年春, 往趙自知家, 南孝溫、秀泉正貞恩、韓景琦、禹善言、茂豐正摠亦來會。 吾語孝溫曰: 「時世不當仕, 吾等宜號爲竹林七賢, 浪遊耳。」 孝溫曰: 「諾。」 各備逍遙巾, 齎酒殽, 約會東大門外城底竹林間, 着其巾。 孝溫作頭, 裕孫次之, 秀泉正、茂豐正、禹善言、趙自知、韓景琦爲七賢。 明陽正賢孫、盧燮、柳房後至, 相對酒巡, 依屠蘇飮, 自少達上, 自唱自舞, 日暮而罷。’ 孝溫則已死, 茂豐正摠流配遠方。 其餘趙自知、貞恩、韓景琦、禹善言、賢孫、盧燮、柳房請拿來推鞫。” 從之。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홍유손이 공초하되, 지난 임인(壬寅)년 봄에 조자지(趙自知)의 집에 갔었는데, 남효온(南孝溫)·수천정(秀泉正) 정은(貞恩)·한경기(韓景琦)·우선언(禹善言)·무풍정(茂豊正) 충(摠)도 또한 모였으므로, 나는 효온에게 말하기를 ‘현재 세상이 벼슬하기에는 부당하니 우리들이 죽림 칠현(竹林七賢)이라 호를 하고 방랑한 놀이나 할 뿐이다.’ 하니, 효온이 ‘그러자.’ 하여 각기 소요건(逍遼巾)2054) 을 준비하고 술과 안주를 싸가지고 동대문 밖에 모이기를 약속하여 성 밑 죽림(竹林) 속에서 그 두건(頭巾)을 쓴 다음 효온이 우두머리가 되고 유손이 차석이 되어 수천정·무풍정·우선언·조자지·한경기와 칠현(七賢)이 되었는데, 명양정(明陽正) 현손(賢孫)·노섭(盧燮)·유방(柳房)이 뒤늦게 와서 서로 대해 몇 순배를 마시고, 도소주(屠蘇酒)2055) 를 마시는 예에 의해서 젊은 자에서 윗사람까지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추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파했다.’ 하였습니다. 효온은 이미 죽었고, 무풍정 총은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으니, 그 나머지 조자지·정은·한경기·우선언·현손·노섭·유방 등을 잡아다가 추국(推鞫)하소서.”
하니, 그대로 하였다.(연산군일기 4년 8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