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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

성대중

忠文成公家白岳之麓。忠正朴公家木覔之趾。並有手植松。蔚然相望。始二公家覆。戮及嬰孩。家宅沒官。彼二松者獨存。豈二公雖殘滅。時人憐之。拊其所手澤而庇護之耶。不然卽芟夷之易。而安得繁茂也。其後三百餘年。莊陵復。六臣得白。俎豆而享之。節惠而褒之。正宗辛亥。設莊陵配食壇。凡爲莊陵殉身者並享之。於是表章無餘憾矣。二松者特立。備見其終始屈伸之際。松亦壽矣。庚申南松爲風雨所折。而北松亦萎死。乃正宗禮陟之歲也。先君子得二松材。合而爲琴。命之曰雙節琴。試鼓之。有異音發焉。甞悠然而聽。淸厲孤直。庶幾得二公之狀。又推以及君臣際遇之盛。文宗不豫。召二公。置端宗於膝。拊其背而諭之曰余以此兒付卿等。仍降榻親酌以勸。二公皆沈醉。命中官撤門扇。舁卧直廬。上手引貂衾覆之。是夜大雪。二公醒。聞異香滿室。相與感激流涕。其恩遇如此。如之何不爲端廟死也

충문 성공의 집은 백악 기슭에 있고 충정 박공의 집은 목멱산 자락에 있었는데 모두 손수 심은 소나무가 울창해 서로 바라다보였다. 처음 두 분의 집안이 뒤집혀 처형당하고 아이들과 집까지 관가에 몰수되었을 때 저 두 그루 소나무만 남아 있었다. 두 분은 비록 죽음을 당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가엾게 여겨 그 손때가 묻은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곧 베어버렷기 쉬웠을텐데 어찌 번성하게 자랄 수 있었으랴.
300년이 지나 장릉이 복위되었다. 사육신도 결백함이 밝혀져 제사를 받게 하고 시호를 내려 포상했다. 정조 신해년에 장릉배식단을 설치하여 장릉을 위해 순절한 모든 분들을 아울러 배향하였다. 이때 와서야 표창에 유감이 없게 되었다.
두 그루 소나무가 우뚝 서서 그 처음과 끝, 굴욕과 신원이 시절을 보았는데 소나무 또한 수명을 다했다. 경신년에 남쪽 소나무가 비바람에 꺾였고 북쪽 소나무 또한 시들어 죽었다. 이는 정종이 승하한 해이다.
선군께서 이 두 그루의 목재를 얻어 합해서 거문고를 만드셨다. 이름을 쌍절금이라 하고 시험 삼아 연주해 보니 뛰어난 소리가 났다. 나도 한번 찬찬히 들어보니 맑고도 굳세고 곧아서 거의 두 분의 모습을 담았으며 또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시절의 성대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문종이 병을 앓고 있을 때 두 분을 불러 무릎에 단종을 앉히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당부하였다.
“내가 이 아이를 경들에게 부탁한다.”
그러고는 어탑에서 내려와 친히 술을 따라 두 사람에게 권하였다. 둘 다 몹시 취하자 내시에게 명하여 문을 떼고 마주 들어 숙소에 누이게 하고 손수 담비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이날 밤 큰 눈이 내렸다. 두 분이 깨어나 기이한 향내가 방 안에 가득한 것을 알고 서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성은이 이와 같았으니 어찌 단종을 위해 순절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성해응 <쌍절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