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박종현

박종현

朴僉知宗賢。高祖妣朴夫人祖考也。公卽許草堂曄之外孫。草堂知音善鼓琴。公常在傍潛聽。草堂嘗自外而入。室中有琴聲。音韻淸高。竊聽良久。開戶視之。則乃外孫僉知公。時年九歲也。草堂大奇之。因盡傳其所學。僉知公以天才之高。得草堂之所授。遂於樂無所不通而最精於琴。所畜多名材。蓬萊琴其一也。公嘗與楊蓬萊士彥。爲琴友甚善。蓬萊題兩詞於琴腹。名曰至樂歌。世稱爲蓬萊琴者以此。公沒。子孫零落失業。朴夫人取蓬萊琴及短琴。一置之家中。嘗以爲吾子孫中如有解此者。嘗以是傳之。仲從祖留守公始學之。中輟而不能終焉。琴雖藏之宗家。短琴則借人而失之。棵之左右五言二十字。卽僉知公之詩與書云厼。丙子九月。聞于仲從祖父而記之。

蓬萊詞。一曰綠綺琴。伯牙心。鍾子始知音。一鼓復一吟。泠泠虛籟起遙岑。江月涓涓江水深。一曰玲瓏石上桐。一鼓一吟三十春。當時鍾子棄我去。玉軫金徽生素塵。陽春白雪廣陵散。倘寄蓬萊山水人。世多模刻。或有亂眞者。琴品頗高。大絃益雄渾。尤宜於平調。古樂師咸德亨常喜鼓之。稱以上品。其後俗師輩惟取婉軟便手。常苦其大剛。少皷之。指已告痛矣。

첨지(僉知) 박종현(朴宗賢)은 우리 고조모(高祖母) 박 부인(朴夫人)의 조고(祖考)이니, 공(公 첨지공(僉知公))은 곧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외손이다. 초당은 음을 잘 알고 거문고도 잘 탔다. 공은 늘 곁에 있으면서 가만히 듣곤 하였다. 초당이 일찍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방안에서 밝고 높은 거문고 소리가 들리므로 오랜 후에 문을 열고 보니 곧 외손인 첨지공이었다. 이때 그는 나이 아홉 살이었다. 초당은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자기가 배운 바를 모두 전해 주었다. 첨지공은 천부의 재질에다 초당의 전해줌을 얻게 되자 드디어 악(樂)에 있어서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특히 거문고에 정통하였다. 비축한 거문고 중 명기도 많았으니. 봉래금(蓬萊琴)이 그 중의 하나다.공은 일찍이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과 거문고 친구가 되어 친히 지냈다. 봉래가 거문고 배에 글 두 편을 적고 지락가(至樂歌)라 이름했는데, 세상에서 봉래금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공은 죽고 자손은 쇠퇴[零落]하여 가업(家業)을 지키지 못하여 박 부인이 봉래금과 단금(短琴) 하나를 집에 간직해 두었는데, 언젠가 이르기를,

“내 자손 중에 만일 거문고를 아는 자가 있다면 이를 전해 주겠다.”
하였다. 중종조(仲從祖) 유수공(留守公)이 초년에 배우다가 중단하고 능히 끝마치지 못하였다. 봉래금은 비록 종가(宗家)에 잘 간직되어 있었건만, 단금은 남에게 빌려 주었다가 잃어 버렸다. 괴협(棵) 좌우에 새긴 오언(五言) 20자(字)는 즉 첨지공의 시(詩)와 글씨라 한다. 병자(丙子) 9월에 중종조부께 듣고 기록한다.
양봉래의 글[詞] 한 편에,

“녹기(綠綺)의 거문고요, 백아(伯牙)의 마음이라. 종자(鍾子)은 비로소 곡조를 알매, 한번 두드리고 다시 한번 읊조리네. 딩딩 거문고 소리 먼 봉우리에 일매 강의 달은 곱디곱고 강의 물은 깊도다.”
라 하였고, 또 한 편에는,

“영롱한 돌 위의 오동, 한번 치고 한번 읊으매 삼십 년이 봄이로다. 그 옛날 종자기(鍾子期) 나를 버리고 가니 옥진(玉軫)과 금휘(金徽)에 흰 티끌이 생겼네. 양춘(陽春)과 백설(白雪) 또 광릉산(廣陵散)을 봉래 산수 사람에게 붙여 줄거나.”
라고 하였다. 이것을 세상에서 모각(模刻)한 것이 많으나 혹 진면(眞面)을 어지럽힌 것이 있다. 거문고 품수가 자못 높은데 큰 것이 더욱 웅혼(雄渾)하여 평조(平調)에 더욱 알맞다. 옛 악사(樂師) 함덕형(咸德亨)이 항상 즐겨 타고 상품(上品)이라 일컬었는데, 그 후에 속된 악사들은 오직 손에 편리하게 곱고 부드러운 것만 취하였으며 크고 억센 것을 괴롭게 여겼으니 조금만 쳐도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이다.

홍대용 <봉래금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