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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金聖基

金聖基 字子豪 號漁隱 江湖客 肅宗朝 琴瑟簫笛有名.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김성기는 자가 자호이고 호는 어은 또는 강호객이다. 숙종조에 거문고와 퉁소 젓대로 명성이 있었다.

琴師金聖器 學琴於王世基 每遇新聲 王輒秘不傳授 聖器夜夜來附王家窓前窃聽 明朝能傳寫不錯 王固疑之 乃夜彈琴 曲未半 瞥然拓窓 聖器驚墮於地 王乃大奇之 盡以所著授之
幾曲新翻捻帶中 拓窓相見歎神工 出魚降鶴今全授 戒汝休關射羿弓
([추재집(秋齋集)] 「金琴師」)

금사 김성기는 왕세기에게 거문고를 배웠는데 세기는 새 곡조가 나올 때마다 비밀에 부치고 성기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자 성기가 밤마다 세기의 집 창 앞에 붙어서서 몰래 엿듣고는 이튿날 아침에 그대로 탔는데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세기가 이상히 여겨 밤중에 거문고를 반쯤 타다 말고 창문을 갑자기 열어젖히자 성기가 깜짝 놀라 땅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세기가 매우 기특하게 여겨 자기가 지은 것을 다 가르쳐주었다.

새로 지은 몇 곡조를 연습하면서
창문 열다 제자 만나곤 신기에 탄복하였네.
물고기 듣고 학도 춤추는 곡조를 이제 전수하니
네게 바라기는 후예를 쏴죽인 일이 다시 없을진저.

盖漁隱 逍遙天地間一閒人也 凡於音律 莫不妙悟 性好江山 構屋于西湖之上 號漁隱 晴朝月夕 或拊琴坐柳磯 或吹簫弄煙波 狎鷗而忘機 觀魚而知樂 以自放於形骸之外. 此其所以自適其適 而善鳴於歌曲者歟.
(진본 [청구영언(靑丘永言)])

어은은 천지 사이에서 소요하는 한가한 사람이다. 깨닫지 못한 음률이 없다. 성품이 강산을 좋아하여 서강가에 집을 얽어매어놓고서 호를 어은이라 했다. 날이 갠 아침이나 달빛 환한 밤이면 버드나무 드리운 낚시터에 앉아서 거문고를 연주하기도하고 안개 낀 강물을 희롱하며 퉁소를 불기도 하였다. 갈매기를 가까이하면서 세상 욕심을 잊었고 물고기를 내려다보며 그 즐거움을 알아냈다. 그런 생활로 형해(形骸) 밖에 내맡겼다. 어은이야말로 자기가 즐기고자 한 것을 즐기면서 가곡에서 명성을 날린자라고 해야겠다.

金聖器 京城樂師也 性通絲竹 無不妙解 中歲棄家 自放江湖間 以釣魚爲事 余是來 物色遇於陽川江中 扁舟篛笠手一竿 望之若物外人 其年六十八 而貌亦不衰 記昔丁巳元夜在鐘樓大街聽聖器笛 後不復見 今四十年 而遇於此亦奇矣
相逢不能識 篛笠覆霜鬚 跡已魚蝦混 形惟山澤癯 心靈妙絲竹 身老愛江湖 安得扁舟買 烟波入爾徒
([노가재집(老稼齋集)] 권5 「丙申閏三月初六日 以舟往幸州」)

김성기는 경성의 악사다. 성품이 현악기와 관악기에 통달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음악이 없었다. 중년에 가정을 버리고 강호 사이에 홀로 노닌 채 물고기 낚는 걸 일삼았다. 내가 여기에 와서 물색을 살피다가 양천강에서 그를 만났는데 일엽편주에 도롱이를 쓴 채 손에는 낚싯대 하나를 쥐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물외인처럼 보였다. 그의 나이는 68세였는데 용모가 노쇠하지 않았다. 옛날 정사년 대보름 밤에 종로 큰 거리에서 피리부는 소리를 들은 뒤로 다시는 보지 못했다. 이제 사십 년 만에 그를 이곳에서 만나다니 기이한 일이다.
그댈 만나 알아보지 못한 건

도롱이 입고 흰머리가 뒤덮어서지.
자취는 물고기와 섞이고
모습은 산택처럼 말랐구려.
정신이 신령하여 악기에 달통하나
몸은 늙어 강호를 사랑하네.
어찌하면 조각배를 사서
물결 속의 그대 곁에 들어가려나.

本朝梁德壽作琴譜 稱梁琴新譜 謂之古調 本朝金成器作琴譜 稱漁隱遺譜 謂之時調
([병와가곡집])

본조의 양덕수가 거문고 악보를 지었는데 양금신보라고 한다. 이것을 고조라고 한다. 본조의 김성기가 거문고 악보를 지었는데 어은유보라고 한다. 이것을 일러 시조라고 한다.


時年八十餘 聖基旣老 韶顔鬚眉若神. 日駕小艇載酒 酒後獨漁釣於江干 或信宿而歸 歸時必吹簫鼓琴 有飄然遺世意. 余過西湖 湖上人猶傳誦之.
([운소만고(雲巢謾稿)] 「기악공김성기사(記樂工金聖基事)」)

당시에 김성기는 벌써 팔십이 넘은 늙은이였으나 불그레한 얼굴에 수염과 눈썹이 신선 같았지요. 날마다 작은 배에 술을 싣고서 술을 마시곤 홀로 강에서 낚시질을 하는데 밤을 새고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배가 돌아올 때는 으레 퉁소를 불고 비파를 탔는데 그 모습이 표연히 세상을 떠나 있는 듯했답니다. 내가 서호를 방문했을 때 강가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화제로 올립디다.

樂師金聖基 以琴名於世 自號浪翁 又稱漁翁 宗卿南原君 嘗從學焉 浪翁死後 公子與同學諸人 傳記所授之曲 而名之曰 浪翁新譜 公子於琴道 大有功矣 公子名楇 字子直 號隨樂窩 戊申菊秋崔濯之題
([낭옹신보] 「최탁지제사(崔濯之題辭)」)

악사 김성기는 거문고로 세상에 유명했다. 자호를 낭옹이라 했는데 어옹이라 부르기도 했다. 종실인 남원군이 일찍이 그를 좇아 배웠다. 낭옹이 죽은 뒤에 공자가 함게 배운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전수받은 곡을 두루 기록하고는 ‘낭옹신보’라고 이름붙였다. 공자는 거문고의 도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하겠다. 공자의 이름은 설이고 자는 자직이며 호는 수락와이다. 무신년 가을 최탁지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