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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랑

향랑

山有花曲者。一善烈婦香娘之怨歌也。香娘見絶於其夫。還家而父母不在。其叔欲令改嫁。則泣而道不可。自沉於洛東江。江上峻坂。有吉先生表節砥柱中流碑。娘之死也。與采春儕女。相遇於碑下。作山有花曲。使春女歌之。歌竟而赴水。卽今江畔兒慣唱山有花。聲甚悽惋。其後漢京崔君士集記其事精甚。爲作山有花女歌。宛轉麗都。怨而不怒。陽陽乎美矣。余覩其辭。實藉采薪女口語。以叙香娘之思。與漢孔雀東南飛行相表裡。而香娘遺曲。但在郊童齒頰間。人不得采其章句。甚慨也。娘素賤不解文藻。其爲此曲。只因巷俚之嘔啞而發其端莊專精之天。余又悲之。遂復用其意而文其辭。竊自幾於漢樂府九章蘼蕪之怨。而爲山有花九歌。是曲也不敢曰有合於古。而後之采風於江南者。將亦有以香娘怨曲。得而陳之矣。
童童木蘭花。亦在南山土。南山高無極。黃雀那得度。十里一徘徊。五里一反顧。浮雲行冉冉。迫此西山暮。念與君離別。泣涕零如雨。故鄕不可處。良景不可覩。無信叔伯言。女實狂而誤。登高以遠望。肅肅雉振羽。雉鳴從其雌。人心不如故

산유화곡은 민간의 노래이다. 단구자 이평자가 산유화를 부른 향랑을 위해 전기를 지었는데 그 대략은 이렇다. “향랑은 선산의 열부이다. 성격이 맑고 깨끗하며 모습도 아름다웠다. 집안도 또한 넉넉하여 여러 자 되는 산호수가 있었는데 같은 고을의 부자 상인에게 시집갔다. 그 시어머니가 음탕하였는데 향랑이 그 사실을 알고 간절하게 충간하는 것을 미워하였다. 그래서 향랑에게도 함께 음탕한 짓 하기를 강요하였다. 향랑이 거절하자 집 밖으로 쫓아냈다. 그 남편도 또한 향랑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처가로 찾아가지 않았다. 향랑은 친구와 함께 낙동강 주변을 헤매면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산에 꽃이 피었으나
나는 홀로 집이 없다네
그래 집 없는 이 몸이란
꽃보다도 못하다오.

또 이렇게 지어 불렀다.

산에 꽃이 피었네
그 꽃은 복사와 오얏이라네
복사와 오얏은 섞여 피었다지만
복사나무엔 결코 오얏이 피지 않으리라

그러고는 친구에게 부탁하였다. 길선생 지주비 아래에서 향랑이 빠져 죽었다고 나를 위해 부모님께 말을 전해주면 고밥겠다. 그러고는 곧 강물에 몸을 던졌다.
평자가 또 골절을 짓자 우리 집안 사람들이 그 시에 화답하였다.

이노원 <산유화곡> 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