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송실솔

송실솔


宋蟋蟀 漢城歌者也 善歌 尤善歌蟋蟀曲 以是名蟋蟀 蟋蟀 自少學爲歌 旣得其聲 往急瀑洪舂砯薄之所 日唱歌 歲餘 惟有歌聲 不聞瀑流聲 又往于北岳顚 倚縹緲 惝惚而歌 始璺析不可臺 歲餘 飄風不能散其聲 自是 蟋蟀歌于房 聲在梁 歌于軒 聲在門 歌于航 聲在檣 歌于溪山 聲在雲間 桓如鼓鉦 皦如珠瓔 嫋如烟輕 逗如雲橫 璅如時鶯 振如龍鳴 宜於琴 宜於笙 宜於簫 宜於箏 極其妙而盡之 乃斂衣整冠 歌于衆人之席 聽者 皆側耳向空 不知歌者之爲誰也 時西平君公子標 富而俠 性好音樂 聞蟋蟀而悅之 日與游 每蟋蟀歌 公子必援琴 自和之 公子琴 亦妙一世 相得甚驩如也 公子嘗語蟋蟀曰 汝能使我失琴不能和耶 蟋蟀 乃曼聲爲 後庭花 之弄 歌 醉僧曲 其歌曰 長衫分兮 美人褌 念珠剖兮 驢子紂 十年工夫 南無阿彌陀佛 伊去處兮 伊之去 唱纔第三章 忽鐺然作僧鈸聲 公子急抽撥叩琴腹 以當之 蟋蟀又變唱樂時調 歌 黃鷄曲 至下章曰 直到壁上 所畵黃雄鷄 折長嚨喉 兩翼ΟΟ鼓 鵠槐搖啼時游 仍作曳尾聲 叫一大噱 公子方拂宮振角 治餘音 泠泠未及應 不覺手撥自 公子問曰 吾固失矣 然爾之初爲鈸聲 又一大噱者何 蟋蟀曰 僧唱佛旣 必鈸而成之 鷄聲之終 必噱 是以然 公子與衆 皆大笑 其滑Ο又如此 公子旣好音樂 一時歌者 若李世春 趙욱子 池鳳瑞 朴世瞻之類 皆日游公子門 與蟋蟀相友善 世春喪其母 蟋蟀與其徒 往吊之 入門 聞孝子哭 曰 此界面調也 法當以平羽調承之 遂就位哭 哭如歌 人聽者傳笑 公子家畜樂奴十餘人 姬妾皆能歌舞 操絲竹恣歡樂二十餘年卒 蟋蟀之徒 亦皆淪落老死 獨朴世瞻 與其婦梅月 至今居北山下 往往酒酣 歌歇 爲人說公子舊游 未嘗不欷歔嘆息也
- 이옥「가자송실솔전」

송실솔은 한양의 노래하는 자다. 노래를 잘 했고 그 중에서도 실솔곡을 잘 불렀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름을 실솔이라 하였다. 실솔은 젊을 때부터 노래를 배웠다. 그러는 동안에 소리를 얻어서 급한 폭포가 떨어져 큰물을 이루고 절구를 찧는 듯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매일 노래를 불렀다. 1년 남짓이 되자 오직 노래 소리만 있고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 북악산 꼭대기에 가서 아득히 높은 곳에 기대어 황홀하게 노래하였다. 처음에는 갈라지고 쪼개져서 모이지 않았다. 일 년 남짓 후에 회오리바람도 그 소리를 흐트러뜨리지 못했다. 이때부터 실솔이 방에서 노래하면 들보에 소리가 있고, 처마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문에 있고, 배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돛대에 있고, 시내나 산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구름 사이에 있었다. 징을 치는 것 같이 굳세었고 구슬 목걸이 같이 또렷했다. 가벼운 연기 같이 산들거렸고 옆으로 누인 구름처럼 머물렀다. 때 맞은 꾀꼬리같이 옥 구르는 소리였다가 용이 우는 것같이 떨쳤다. (그의 소리는) 거문고와도 조화롭고, 생황과도 조화롭고, 퉁소에도 조화롭고, 쟁과도 조화로웠다. 그 묘함을 다하여서 남지 않게 하였다. 옷을 오므리고 갓을 가지런히 하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하면 듣는 자는 귀를 허공에 향하여 기울여 노래 부르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이 때에 서평군 공자 표는 부유하고 호협하였다. 천성이 음악을 좋아하여서 실솔의 (노래를)듣고 기뻐하였고 날마다 함께 놀았다. 실솔이 노래하면 공자는 반드시 거문고를 뜯어서 몸소 응하였다. 공자의 거문고 또한 한시대의 묘한 솜씨로 서로 대단한 기쁨을 얻음이 같았다. 공자가 어느 날 실솔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가 거문고 좇음을 잃게 하여서 화답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 실솔이 이에 소리를 길게 끌며 후정화의 곡으로 취승곡을 불렀다. 그 노래는

장삼을 잘라내어 미인의 속옷 짓고
염주를 끊어내어 나귀 고삐 만들었네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어디 가서 살까. 저리로 가자.

노래가 금방 3장 차례가 되자, 갑자기 ‘당’소리를 바라소리로 만들었다. 공자가 급하게 채를 빼서 거문고의 배를 두들겨서 그것에 맞췄다. 실솔은 또 낙시조로 바꿔 불러 황계곡을 노래하였다. 아랫장에 이르러

벽에 그린 황계 수탉이
긴 목을 늘어뜨리고
두 나래 탁탁 치며
꼬끼오 울 때까지 놀아보세

거듭 꼬리 끄는 소리를 내고 부르짖고 크게 한 번 웃었다. 공자는 궁으로 떨며 각으로 떨며 여음을 바로잡다 영령 응함에 미치지 못하였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술대가) 스스로 손에서 떨어트렸다. 공자가 물었다. “내가 틀렸다. 니가 처음에는 바라 소리를 내고 또 크게 한번 웃었느냐?” 실솔이 “스님이 염불을 마치면 반드시 동발로 마치고 닭 울음이 끝나면 반드시 웃지요. 이러한 까닭입니다.” 공자와 함께 무리가 모두 크게 웃었다. 또한 이러했다.
공자가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이세춘, 조욱자, 지봉서, 박세첨 무리 등 당대의 노래하는 자가 모두 날마다 공자의 문하에서 놀며 실솔과 우의가 좋았다.
세춘의 어머니가 상을 당하자 실솔이 무리들과 함께 조문을 갔다. 문에 들어가 상주의 곡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이것은 계면조다. 당연히 평우조로 이것을 받아야 하지.” 마침내 자리로 나아가 곡하니 곡이 노래 같았다. 들은 사람들이 전하여 웃었다. 공자집에 악인(樂人) 종이 십여명을 양성했다. 희첩 모두 가무에 능하였다. 거문고와 퉁소를 다루며 20여년간 마음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다가 죽었다. 실솔의 무리 또한 모두 흩어져서 늙어 죽었다. 박세첨 혼자 그 아내 매월과 함께 지금도 북산 아래에 거하며 때때로 술에 취하면 노래를 그치고 사람들에게 공자와 놀던 옛 얘기를 하면서 과연 흐느껴 울며 탄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