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가희아

가희아

辛巳/罷大護軍黃象職, 甲士楊春茂等四人充水軍。 初, 象以上妓可喜兒爲妾, 摠制金宇亦曾通可喜兒。 冬至內宴旣罷, 可喜兒出自宮門, 還于象家, 宇遣所管甲士及從人, 要於路而奪之不及, 追至象家搜之, 又不得。 翼日, 象令可喜兒騎馬率僕過於市, 宇又遣甲士僕從要之, 象走馬持杖而逐之, 甲士從人皆散, 觀者如堵, 道路傳語, 而無有劾問者。 上聞之, 召司憲持平金庚命之曰: “內宴呈才上妓, 或有隱置其家, 謂之己妾, 常不放出, 我所曾識面之妓, 於內宴或有不至者。 闕於呈才, 所不足道也, 至於隱置其家, 以爲己妾, 謂之何哉! 汝宜擧劾以聞。” 後數日, 召掌令卓愼命之曰: “今聞以上妓之故, 被劾者多。 前日我言, 指累年潛置其家, 不令出外者耳, 非謂朝官不得畜上妓爲妾也。 河久、金宇, 已令出仕, 汝宜知之。” 愼啓曰: “宇罪與久不同。 夫於白晝大途之中, 遣禁軍爲私鬪, 長此不已, 後日無乃用之於作亂乎?” 上曰: “宇, 功臣也, 不可治罪, 若其從臾爲非者, 可核實以聞。” 憲府啓: “去十一月十二日夜, 金宇發遣所管甲士騎步兵三十餘名, 圍把黃象之家, 甲士羅原冏ㆍ高孝誠等, 直入象臥內, 搜妓妾可喜兒而未得, 取其衣裝而去。 翼日, 金宇更發送丘從皂隷, 奪可喜兒而來, 至壽進坊洞口, 象聞之, 走馬持杖追之, 蹴踏可喜兒。 宇卽發晝番甲士楊春茂ㆍ高孝誠ㆍ朴東秀等十餘名及私伴二十餘名, 持杖與象相鬪, 春茂擊象, 以致銀帶擺落。 臣等竊惟, 軍政以嚴爲主, 各守其分, 然後上下相安, 階級之間, 不相凌犯, 上能出命, 下能服役, 永無不戢之患。 宇起自卑微, 別無才德, 厚蒙上恩, 官至摠制, 日益謹愼, 圖報上恩, 乃其職分, 不顧義理, 恣行非法, 擅發禁軍, 奪人之妾, 是謂大亂之源。 春茂等身爲禁軍, 反從金宇私忿之命, 犯夜圍把黃象之家, 且於街路, 與之格鬪, 打落銀帶, 實爲不當。 黃象以不小三品, 持杖走馬, 爭妓妾於朝路。 乞將金宇職牒收取, 明正其罪, 以杜亂源; 楊春茂、高孝誠、朴東秀、羅原冏, 職牒收取, 依律論罪; 其黃象, 亦望停職, 以礪士風。” 命黃象罷職; 春茂等四人, 各於本鄕充水軍; 可喜兒杖八十收贖; 金宇功臣, 其勿擧論。” 司憲府又啓: “金宇昨任江界兵馬使, 恣行貪慾, 及受代赴京, 多率伴人, 每站留宿, 屠殺雞犬, 害及於民。 本府請罪, 殿下錄其微勞, 置而勿論, 誠宜改過自新, 圖報上恩, 而乃不改前心, 自謂雖或作罪, 必蒙恩宥, 肆其强暴, 擅發禁兵, 夜圍人家, 奪其妓妾, 乃至白晝朝路, 成黨作亂, 情犯深重。 若又不加罪責, 則前無所懲, 後將無所不爲。 乞將金宇, 一如前日狀申施行。” 疏上留中。

대호군(大護軍) 황상(黃象)을 파직시키고, 갑사(甲士) 양춘무(楊春茂) 등 네 사람을 수군(水軍)에 편입시켰다. 처음에 황상이 상기(上妓)1143) 가희아(可喜兒)를 첩으로 삼았는데, 총제(摠制) 김우(金宇)도 또한 일찍이 가희아와 정을 통하였었다. 동짓날 내연(內宴)이 파하자, 가희아가 궁문(宮門)을 나와 황상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김우가 부하 병사와 수종꾼을 보내어 길에서 기다리다가 탈취(奪取)하려 하였으나 붙잡지 못하고, 뒤쫓아 황상의 집에 이르러 수색하였으나 또한 잡지 못하였다. 이튿날 황상(黃象)이 가희아(可喜兒)로 하여금 말을 타고 종을 거느리고 저자[市]를 지나가게 하였는데, 김우(金宇)가 또 병사와 수종꾼을 보내어 기다리게 하므로, 황상이 말을 달려 곤장을 가지고 쫓으니, 병사와 수종꾼이 모두 흩어지고, 구경꾼이 구름같이 모였다. 도로(道路)에서 말이 전해져 소문이 났으나, 따져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임금이 듣고 사헌 지평(司憲持平) 김경(金庚)을 불려 명령하였다.

“내연(內宴)에 정재(呈才)하는 상기(上妓)를 간혹 제 집에 숨겨 두고 제 첩(妾)이라 하여, 항상 내보내지 않는 일이 있다. 내가 일찍이 얼굴을 아는 기생도 내연(內宴)에 혹 나오지 않는 자가 있어, 정재(呈才)에 궐원(闕員)이 생긴다. 그것은 족히 말하잘 것이 없지마는, 제 집에 숨겨 두고 ‘제 첩이라’고까지 하는 것은 어떻다 하겠는가! 너는 마땅히 거론하여 탄핵해 아뢰라.”

수일이 지난 뒤에 장령(掌令) 탁신(卓愼)을 불러 명령하였다.


“이제 들으니, 상기(上妓)의 연고로 말미암아 탄핵을 당한 자가 많다고 하는데, 전날 내가 말한 것은 여러 해 동안 제 집에 숨겨 두고 외출하지 못하게 하는 자를 가리킨 것이고, 조관(朝官)이 상기(上妓)를 첩으로 삼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하구(河久)·김우(金宇)는 이미 출사(出仕)하게 하였으니, 너는 그리 알라!”

탁신이 아뢰기를,

“김우의 죄는 하구와 같지 않습니다. 대저 대낮에 큰길 가운데서 금군(禁軍)을 보내어 사사 싸움을 시켰으니, 이 버릇이 자라고 그치지 않는다면, 후일에 난을 꾸미는데 이용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김우는 공신이니 치죄(治罪)할 수 없고, 꾀어서 나쁜 짓을 하도록 이끈 자를 핵실(覈實)하여 아뢰라!”

하였다. 헌부(憲府)에서 아뢰었다.

“지난 11월 12일 밤에 김우(金宇)가 자기 소관(所管)인 갑사(甲士) 가운데 기병(騎兵)·보병(步兵) 30여 명을 보내어 황상(黃象)의 집을 포위하고, 갑사 나원경(羅原冏)·고효성(高孝誠) 등이 곧장 황상의 내실(內室)에 들어가 기생첩 가희아(可喜兒)를 찾았으나 잡지 못하니, 그 의장(衣裝)을 취하여 갔습니다. 이튿날 김우가 다시 구종(丘從)과 조례(皂隷)를 보내어 가희아를 빼앗아 오게 하여, 수진방(壽進坊) 동구(洞口)에 이르니, 황상이 듣고 말을 달려 장(杖)을 가지고 추격하여 가희아를 뒤쫓았습니다. 이리하여 김우가 즉시 주번 갑사(晝番甲士) 양춘무(楊春茂)·고효성(高孝誠)·박동수(朴東秀) 등 10여 명과 사반(私伴) 20여 명을 발하여, 장(杖)을 가지고 황상과 더불어 서로 싸웠는데, 양춘무가 황상을 쳐서 은대(銀帶)가 깨어져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군정(軍政)은 엄한 것을 주장으로 삼아 각각 그 분수를 지킨 뒤에야,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하고, 계급 사이에 서로 능멸하거나 범(犯)하지 아니하여, 위에서는 능히 명령을 내고 아래에서는 잘 복역(服役)하게 되어, 그칠 줄 모르는 근심이 영원히 없어질 것입니다. 김우는 미천한 집안에서 출신하여 별로 재주와 덕이 없는데, 후하게 주상의 은혜를 입어서 벼슬이 총제(摠制)에 이르렀으니, 날로 더욱 근신하여 주상의 은혜를 갚기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그 직분일 터인데, 의리를 돌보지 않고 불법한 짓을 자행하여 마음대로 금군(禁軍)을 발하여 남의 첩을 빼앗았으니, 이것이 큰 난(亂)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양춘무(楊春茂) 등은 금군(禁軍)이 된 몸으로 도리어 김우(金宇)의 사분(私忿)에서 나온 명령을 따라, 밤에 황상의 집을 포위하였고, 또 길거리에서 서로 더불어 격투하여 그 은대(銀帶)를 쳐서 떨어뜨렸으니 실로 부당합니다. 황상(黃象)은 작지 않은 3품관으로서 장(杖)을 가지고 말을 달려 조정길[朝路]에서 기첩(妓妾)을 다투었으니, 빌건대, 김우(金宇)의 직첩(職牒)을 회수하고 그 죄를 밝게 바루어서 난의 근원을 막으시고, 양춘무(楊春茂)·고효성(高孝誠)·박동수(朴東秀)·나원경(羅原冏)은 직첩을 회수하고 율에 의하여 논죄하고, 황상(黃象)도 또한 정직(停職)시켜서 선비의 풍습을 고치게 하소서.”

임금이 명하기를,

“황상은 파직시키고, 양춘무 등 네 사람은 각각 본향(本鄕)의 수군(水軍)에 편입하고, 가희아는 장(杖) 80대를 수속(收贖)하게 하고, 김우는 공신이니 거론하지 말라.”

하니, 사헌부에서 또 아뢰었다.

“김우(金宇)는 작년에 강계 병마사(江界兵馬使)로 있을 때에 탐욕(貪慾)을 자행하였고, 체대(遞代)를 당하여 서울로 올라올 때에 반인(伴人)을 많이 거느리고 역참(驛站)마다 유숙하면서 개와 닭을 도살하여, 폐해가 백성에게 미쳤으므로, 본부(本府)에서 그 죄를 청하였는데, 전하께서 그 작은 공로를 생각하시어 내버려두고 논하지 말게 하셨으니, 진실로 마땅히 허물을 고치지 않고 스스로 새 사람이 되어 주상의 은혜를 갚기를 도모해야 할 터인데, 전의 마음을 고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비록 악한 짓을 하더라도 반드시 은유(恩宥)를 입으리라.’ 여기고, 강포(强暴)한 짓을 방자히 하여 임의로 금병(禁兵)을 발하여 밤중에 남의 집을 포위하고, 남의 기생첩을 강탈하여, 대낮에 조로(朝路)에서 떼를 지어 난동을 부리기에 이르렀으니, 정상과 범죄가 심중(深重)합니다. 만일 또 죄책을 가하지 않으면, 지난 일을 징계하는 바가 없어 뒷날에는 장차 못할 짓이 없을 것입니다. 빌건대, 김우(金宇)를 한결같이 전일의 장신(狀申)한 바와 같이 시행하소서.”

소(疏)가 올라가니, 대내(大內)에 머물러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