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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정재

<궁중정재>

○ 헌선도(獻仙桃)

헌선도(獻仙桃)는 궁중 정재 가운데 당악정재(唐樂呈才)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원소 가회(元宵嘉會)에 임금에게 경수(慶壽)하기 위하여 왕모(王母)가 선계(仙界)에서 내려와 선도를 올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조선조의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춤의 연행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죽간자(竹竿子) 2인, 왕모(王母) 1인, 협무(挾舞) 2인과 탁자를 받드는 봉탁(奉卓) 1인, 반을 받드는 봉반(奉盤) 1인 등으로 춤이 구성된다. 여기(女妓)가 연행하는 춤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수연장(壽延長)

수연장(壽延長)은 궁중 정재 가운데 당악정재(唐樂呈才)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군왕(君王)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된 춤이다. 조선조의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춤의 연행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죽간자(竹竿子) 2인, 무원 8인, 또는 원무(元舞) 4인 협무(挾舞) 16인으로 춤이 구성되기도 한다. 여기(女妓)가 연행하는 춤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오양선(五羊仙)

오양선(五羊仙)은 궁중 정재 가운데 당악정재(唐樂呈才)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다섯 사람의 신선이 오색(五色)의 양(羊)을 타고 한 줄기에 여섯 이삭을 갖는 육수거(六穗秬)를 효성이 지극한 백성에게 내려 주었다는 고사의 내용이 반영된 춤이다. 조선조의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춤의 연행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죽간자(竹竿子) 2인, 원무(元舞) 1인, 협무(挾舞) 4인으로 춤이 구성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포구락(抛毬樂)

포구락(抛毬樂)은 궁중 정재 가운데 당악정재(唐樂呈才)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한다. 1073년(고려 문종 27) 11월에 교방(敎坊) 여제자와 함께 처음으로 공연하였다. [송사(宋史)] 권 142 「악지(樂志)」에 의하면 153인이 추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편을 둘로 갈라서 춤을 추는데, 채구(彩毬) 즉 공을 풍류안(風流眼)이라 부르는 구멍에 넣으면 꽃을 받들고 있던 사람이 꽃을 주고, 공을 넣지 못하면 벌로 뺨에 먹으로 점을 찍는 방식으로 춤을 연행한다. 포구락 정재의 구성 인원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원무(元舞) 10인과 협무(挾舞) 8인, 원무 6인, 또는 죽간자(竹竿子) 2인에 원무(元舞)만 8인을 추기도 한다. 여기(女妓)가 연행하는 춤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금척(金尺)

금척(金尺)은 궁중 정재 가운데 조선 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이다. 몽금척(夢金尺)이라 칭하기도 한다. 1393년(태조 2)에 정도전(鄭道傳)이 가사를 지어 올렸다. 금척정재는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금척을 받들고 하늘에서 내려와 금척을 주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는 태조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의미를 궁중정재로 만든 것이다. 여기(女妓)가 연행하는 춤이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수보록(受寶籙)

수보록(受寶籙)은 궁중 정재 가운데 조선 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이다. 1393년(태조 2)에 정도전(鄭道傳)이 가사를 지어 올렸다. 수보록정재는 태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지리산의 돌벽 속에서 이상한 글, 즉 이서(異書)를 얻은 일을 형상화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궁중의 연례(宴禮)에서 연행되었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 근천정(覲天庭)

근천정(覲天庭)은 궁중 정재 가운데 조선 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이다. 1402년(태종 2)에 하륜(河崙)이 가사를 지어 올렸다. 근천정은 세종대에 회례연(會禮宴), 동지(冬至), 정월 초하루의 연회, 양로연(養老宴) 등에서 연행되었다. 근천정의 악보와 노랫말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되어 있다. 노래의 선율은 주희(朱熹)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시악(詩樂)」 중의 ‘남산유대(南山有臺)’ 제 2장과 같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儀禮經傳通解]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수명명(受明命)

수명명(受明命)은 궁중 정재 가운데 조선 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이다. 1402년(태종 2)에 하륜(河崙)이 가사를 지어 올렸다. 세종대에 회례연(會禮宴), 동지(冬至), 정월 초하루의 연회, 양로연(養老宴) 등에서 연행되었다. 수명명의 악보와 노랫말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되어 있다. 노래의 선율은 주희(朱熹)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 「시악(詩樂)」 중의 ‘남산유대(南山有臺)’와 같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儀禮經傳通解]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봉래의(鳳來儀)

봉래의(鳳來儀)는 궁중 정재 가운데 조선 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다. 1445년(세종 27)에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무악(舞樂)으로 구성한 것이다. 봉래의의 구성곡은 전인자(前引子), 진구호(進口號),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豊亨), 후인자(後引子), 퇴구호(退口號)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전인자는 일종의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하며 진구호와 퇴구호는 봉래의 춤의 앞뒤에서 죽간자를 든 사람이 부르는 구호(口號)에 해당한다.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 등의 자료에 그 내용이 전한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아박무(牙拍舞)

아박무(牙拍舞)은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동동(動動)’으로 되어 있으며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아박’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박의 일종인 아박(牙拍)을 손에 들고 춘다. 춤을 추는 인원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소 달라 2인이 추는 경우부터 원무(元舞) 2인 외에 협무(挾舞) 4인에서 20인까지의 예가 보인다. 아박은 상아(象牙)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며 고래뼈, 쇠뼈, 사슴 뿔과 같은 것으로 여섯 쪽을 사슴 가죽으로 꿰어 만든다. 무동(舞童)이나 여기(女妓)가 춤을 춘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향발무(響鈸舞)

향발무(響鈸舞)는 향발을 손에 들고 추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그 무보가 전한다. 춤을 추는 인원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르나 2인, 2인, 6인, 8인, 10인, 12인 등이다. 조선 말기에 연행한 향발무의 경우 2인이 향발을 들고 추며, 18인에서 20인의 협무(挾舞)가 따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純祖己丑進饌儀軌]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무고(舞鼓)

무고(舞鼓)정재는 고려시대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다. 원래 무원 2인이 한 대의 무고로 추는 춤이었으나 성종대 이후 두 대의 무고로 춤추는 이고무(二鼓舞), 사고무(四鼓舞), 팔고무(八鼓舞) 등 북의 수와 무원의 수에서 변화를 보인다. 무동(舞童)이 추기도 하고 여기(女妓)가 추기도 하는데, 외연(外宴)에서는 무동이, 내연(內宴)에서는 주로 여기가 춤을 연행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樂志」, [樂學軌範], [呈才舞圖笏記], [純祖己丑進饌儀軌]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86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7

○ 교방가요(敎坊歌謠)

교방가요(敎坊歌謠)는 왕이나 왕비가 궁 밖을 나갔다가 다시 궁으로 돌아올 때 환궁행렬을 맞이하며 왕(왕비)의 대가(大駕) 앞에서 가요축(歌謠軸)을 올리는 의례의 절차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향악정재(鄕樂呈才)’ 항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왕에게 올릴 가요(歌謠)를 적은 가요축(歌謠軸)을 올리는 부분이 핵심절차이므로 의례의 명칭을 교방가요라 하였다. 기로(耆老)와 유생(儒生), 교방(敎坊)의 기녀(妓女)들이 연도를 화려하게 꾸미고 왕의 행렬을 맞이하며 송축의 의미를 담은 가요를 적은 축을 올린다. 이 때 장악원에서는 여러 공연물을 준비하여 왕이 다시 궁으로 들어가기 전 바깥 세계의 잡된 기운을 떨쳐내기 위한 의미를 담은 공연을 행한다. 장악원 소속된 악인들은 교방가요 의례에서 여민락 영과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사수무(四手舞), 학무(鶴舞), 연화대무(蓮花臺舞), 금척무(金尺舞) 등의 궁중정재를 연행한다. 이 때에는 침향산(沈香山), 지당(池塘), 화전벽(花甎碧) 등의 무대장치도 동원된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권5 「時用鄕樂呈才圖儀․敎坊歌謠」
송지원, 「조선시대 궁중학무의 연행양상 연구」 [공연문화연구] 제15집, 한국공연문화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