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길례

<제사와 음악, 길례>
왕실의 제사는 오례 중의 길례로서 행해졌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대상에 따라 용어를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천신(天神)에 지내는 것은 ‘사(祀)’, 지기(地祇)에 지내는 것은 ‘제(祭)’, 인귀(人鬼)에 지내는 것은 ‘향(享)’, 문선왕(文宣王 : 공자)에게 지내는 것은 석전(釋典)이라 하였다.
또 제례의 등급을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기고(祈告)․속제(俗祭)․주현(州縣)으로 구분하였다. 대사에는 사직․종묘 제향 등이, 중사에는 선농(先農)․선잠(先蠶)․문묘(文廟) 제례 등이, 소사에는 명산대천(名山大川)․둑제(纛祭) 등이 포함된다. 기고는 기도(祈禱)와 고유(告由)의 목적으로 올리는 것인데, 홍수․가뭄․전염병․병충해․전쟁 등의 일이 있을 때 기도하였고, 책봉․관례(冠禮)․혼례 등 왕실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고유하여 각각 해당하는 대상에 제사를 올렸다. 속제는 왕실의 조상을 속례(俗禮)에 따라 제사하는 것이며, 주현은 지방 단위에서 지방관이 주재자가 되어 사직(社稷)․문선왕(文宣王)․포제(酺祭)․여제(厲祭)․영제(禜祭) 등의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대사․중사․소사가 왕실이 행하는 주요 제사에 해당한다. 대․중․소의 등급은 실제 제사에서 헌관(獻官)의 수나 위격, 재계(齋戒)하는 일수, 음악의 사용 유무, 제기의 종류와 숫자 등에서 구분된다. 이들 제사에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음악이 사용되었다. 이때의 음악은 넓은 의미의 악에 해당하는 악․가․무 즉 기악과 노래와 춤을 모두 포함한 형태로 연행된다.


<표> 대사․중사․소사의 차이점


*소사에서는 음악을 사용하지 않으나 둑제에서는 예외적으로 사용하였다.


[국조오례서례] 권 1, 길례․변사 ; [주례(周禮)] 권 5, 춘관․종백(春官․宗伯)에 기록된 대사․중사․소사의 구분은 “肆師之職, 掌立國祀之禮, 以佐大宗伯. 立大祀用玉帛牲牷, 立次祀用牲幣, 立小祀用牲. 以歲時序其祭祀及其祈珥. 大祭祀展犧牲繫于牢頒于職人.”이라 되어 있다.


길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 제향하는 종묘제(宗廟祭)와 국토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제(社稷祭)였다. 이는 대사에 속한다. 또 공자와 그의 제자, 중국의 역대 거유(巨儒), 조선의 역대 유학자를 모신 문묘에 제사하는 석전제(釋奠祭) 즉 문묘제와 농사신에 제사하는 선농제(先農祭)를 비롯하여 산천제(山川祭), 기우제(祈雨祭), 선잠제(先蠶祭) 등의 제사도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제사 행위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귀(人鬼)에 대해 사람으로서 갖출 수 있는 최대의 예와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三才思想)을 음악적으로 드러낸 악을 구비하였다. [국조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는 길례의 종류는 표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길례 목록’과 같다. 길례 가운데 대사에 속하는 종묘와 사직의 제례, 중사에 속하는 문묘 제례, 소사에 속하는 둑제의 악․가․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표>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길례 목록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종묘 제례악은 세종대에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제정한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1464년(세조 10)에 제례악으로 채택하여 사용한 것이다. 종묘 제례에는 당상(堂上)에서 연주하는 등가(登歌)와 당하(堂下)에서 연주하는 헌가(軒架), 그리고 묘정(廟廷)에서 열을 지어 추는 춤인 일무(佾舞)가 의례와 함께 특정 절차에서 연행된다. 등가는 하늘을 상징하고, 헌가는 땅을 상징하며, 일무는 사람을 상징하여 천지인삼재 사상을 악대(樂隊)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이때 일무를 추는 열의 수는 제사의 대상에 따라 차등화되는데, 천자(天子)는 8열, 제후(諸侯)는 6열, 대부(大夫)는 4열, 사(士)는 2열로 구분된다. 조선 왕조는 제후국의 위상을 따라 육일무(六佾舞)를 채택하였고,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대한제국 시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팔일무(八佾舞)를 연행해 오고 있다.
보태평은 왕의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내용이며,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내용을 갖추고 있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때에 보태평의 악무를 연행하며,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때에 정대업의 악무를 연행한다. 육일무를 기준으로 보면 문무(文舞)를 출 때에는 왼손에 약(籥)을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를 출 때에는 앞의 2줄 12명은 검(劍), 중간 2줄 12명은 창(槍), 뒤의 2줄 12명은 궁시(弓矢)를 들고 추었다. 그러나 성종대 이후 궁시는 쓰지 않고 앞의 3줄은 검, 뒤의 3줄은 창을 들고 추었다. 현재는 64명의 팔일무를 추는데, 앞의 4줄은 목검(木劒), 뒤의 4줄은 목창(木槍)을 들고 춤을 춘다.
사직단은 동쪽의 사단(社壇)과 서쪽의 직단(稷壇) 두 개의 단으로 구성되는데, 사단에는 국토의 신인 국사(國社)의 신주를, 직단에는 오곡의 신인 국직(國稷)의 신주를 모셔 놓는다. 종묘나 문묘, 선농, 선잠의 신위는 북쪽에서 남향하여 두는 데 비해 국사, 국직의 신은 남쪽에서 북향하여 둔다. 북쪽이 음이고, 남쪽은 양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조선이 황제국임을 선언하면서 국사와 국직은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시대의 사직 제례악은 1430년(세종 12)에 아악(雅樂)을 정비할 당시에 [주례(周禮)]를 근거로 정비하였다. 지기에 제사할 때에는 당하의 헌가에서 태주(太簇)를 연주하고, 당상의 등가에서 응종(應鍾)을 노래하는 음양합성지제(陰陽合聲之制)의 원칙을 따랐다. 즉 헌가에서 양률(陽律)인 태주궁(太蔟宮)의 선율을 연주하고 등가에서 음려(陰呂)인 응종궁(應鍾宮)의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하는 연주를 실현한 것이다. 태주와 응종은 십이지(十二支)로 말하면 인(寅)과 해(亥)에 해당하여 음과 양이 합한 것이다. 또 신을 맞이하는 영신 절차에는 임종궁(林鍾宮) 8변(變)을 연주함으로써 “악이 여덟 번 변하면 지기가 모두 나와 예를 올릴 수 있다.”는 [주례]의 전거를 따라 음악 연주의 횟수도 조절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종대에 정비된 사직 제례악은 조선조 내내 변함없이 연주되었다.
사직 제례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순서를 각 의식 절차별로 정리하면 영신, 전폐, 진찬(進饌),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撤籩豆), 송신(送神) 등의 순서이다. 사직 제례악의 악대는 세종대 초기만 하더라도 고제(古制)를 따라 등가에 현가(絃歌) 즉 현악기와 노래를 편성하고, 헌가에 포죽(匏竹) 즉 관악기를 편성하였다. 그러나 1430년 이후 등가에도 관악기를 설치하면서 고제와 어긋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사직 제례의 일무는 조선조에는 육일무, 대한제국 시기에는 팔일무를 추었다. 문무를 출 때에는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을 들었고, 무무를 출 때에는 왼손에 간(干), 오른손에 척(戚)을 들었다. 간은 방패 모양으로 생명을 아끼는 뜻을 지니며, 척은 도끼 모양으로 업신여김을 방어하는 뜻을 지닌다.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인 문묘제는 중사에 속한다. 조선 시대의 문묘는 1398년(태조 7)에 완성하였다. 문묘에 배향(配享)한 인물은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19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공자와 사성(四聖)인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 중국의 공문십철(孔門十哲)과 송조 육현(宋朝六賢),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 모신 중국 명현(名賢) 94명과 우리나라 명유(名儒) 18명, 즉 최치원(崔致遠)․설총(薛聰)․안유(安裕)․정몽주(鄭夢周)․정여창(丁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 등, 총 112명이 종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1949년 전국 유림 대회의 결의에 따라 동무와 서무에 배향하였던 중국 명현 94명의 신주는 땅에 묻고(埋安), 우리나라 명현 18위를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에 올려서 배치함으로써 정전에는 공자와 사성, 공문십철과 송조 육현, 우리나라의 명현 18인의 신위를 포함하여 모두 39명의 신위를 모셔 오늘에 이른다.
문묘에 제사할 때 연주하는 음악은 1116년(고려 예종 11)에 송나라에서 들여온 대성아악(大晟雅樂)이었다. 이후 세종대에 박연(朴堧, 1378~1458)을 중심으로 하여 원나라의 임우(林宇)가 지은 [석전악보(釋奠樂譜)]를 참고하여 음악을 정비해서 사용하였다. 문묘 제례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순서를 각 의식 절차별로 정리하면 영신, 전폐, 진찬,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 송신 등의 순서이다. 문묘 제례악 또한 세종대에 [주례]의 음양합성 제도에 따라 등가에서 음려인 남려궁(南呂宮)을 연주하고, 헌가에서 양률인 고선궁(姑洗宮)의 선율을 쓰는 제도를 채택하였다. 문묘 제례의 일무는 조선조에는 육일무를, 대한제국 시기 이후에는 팔일무를 연행하여 현재에 이른다.
둑신(纛神)으로 상징되는 군기(軍旗)인 둑기(纛旗)에 지내는 제사 둑제는 소사에 속한다. 둑제는 해마다 경칩(驚蟄)과 상강일(霜降日)에 정기적으로 지냈으며, 비정기적으로도 군대를 움직일 때면 반드시 지낼 만큼 군대와 관련한 의례로 중요하게 여겼고, 조선 시대 내내 거행되었다.
둑제의(纛祭儀)는 소사에 해당하지만 악무가 수반되어 여타 소사와 구분된다. 소사이면서 악무가 수반되는 예로는 정조대에 행하고자 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친 별 제사 영성제(靈星祭)와 노인성제(老人星祭)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둑제의는 소사이면서 악무를 수반한 유일한 의례이다.
둑제의 의례는 영신, 전폐,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 송신의 절차를 지녀 여타 의례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 가운데 악무는 초헌과 아헌, 종헌, 철변두의 네 절차에서만 연행된다. 초헌례에서는 태조의 건국과 무공을 찬미한 내용의 악장인 납씨가(納氏歌)를 부르고, 간과 척을 손에 들고 추는 간척무(干戚舞)를 연행한다. 아헌례에서도 역시 납씨가를 부르나 춤은 궁시무(弓矢舞)로 바뀐다. 궁(弓 : 활)은 왼손에, 시(矢 : 화살)는 오른손에 들고 춤을 추는데, 방향은 북쪽이다. 이때에는 소금(小金), 중고(中鼓), 대금(大金) 같은 타악기를 동시에 쳐서 1절을 연주하고, 이어서 북이 먼저, 대금(징)이 나중에 연주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마무리한다. 종헌례에서도 초헌, 아헌과 마찬가지로 납씨가를 노래하는데, 이때 추는 춤은 창검무(槍劍舞)이다. 왼손에 창을 들고, 오른손에 검을 들고 추는데, 중고의 반주에 맞추어 서로 마주 보고 춤을 춘다. 제기를 거두는 철변두 절차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요동 정벌(遼東征伐)을 위해 출정하였다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악장인 정동방곡(靖東方曲)을 노래하고, 앞의 세 가지 춤, 즉 간척무․궁시무․창검무를 함께 연행한다. 철변두 절차에서 춤이 수반되는 것은 여타 길례의 연행 방식과 다른 점이다. 종묘 제례와 문묘 제례 등의 철변두 절차에서는 연주만 있지 춤은 없다. 그러나 둑제의 철변두 절차에서는 초헌․아헌․종헌에서 연행하였던 모든 악무가 다 나와서 연행하는 차이가 있다.
둑제의의 춤은 다른 제례와 달리 문무와 무무라는 구분을 짓지 않는다. 또 다른 제례에서 연행하는 일무, 즉 줄지어 추는 춤을 연행하지 않고 진법(陣法)에 따르는 춤을 구사한다. 둑제의가 군대와 밀접하게 관련된 의례이기 때문이다. 다른 제사와 달리 무신(武臣)들이 제사할 수 있는 최고의 대상으로 자리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헌관 또한 병조 판서 1명이 초헌․아헌․종헌의 삼헌(三獻)을 모두 올린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儀], [國朝五禮序例], [周禮], [論語集註], [世宗實錄樂譜], [國朝五禮儀], [國朝續五禮儀] [春官通考] [國朝喪禮補編]
송지원, "왕실의 행사와 전례음악"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국사편찬위원회 편, 2008, 310-3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