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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의기여

<음악후원의 기여, 혹은 부정적 측면>

조선시대 ‘전문가로서의 음악인’들의 물적 토대는 지극히 미약했다. 1723년 당시 악공들의 월급은 한 달에 베 한 필 정도였다. ‘전문가로서의 음악인’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악공이나 악생의 신분으로 받는 물적 보상은 지극히 미미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음악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음악인들의 경제적 위상은 조금씩 나아진다. 다시 말하면 관에 얽매이지 않고 사사로이 음악활동을 하면서도 생활이 영위되는 시대가 열린다. 관에 소속되어 있는 음악인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민간에서의 음악수요에 응할 수도 있었다. 명성을 얻은 음악인들은 연주행위를 통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후기 음악의 융성한 발전양상을 설명해 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민간에서의 음악수요 주체가 바로 음악후원자들이다. 음악인과 그 후원자들의 역학관계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수요주체인 음악후원자들이 원하는 음악을 공급주체인 음악인들이 제공하고, 음악인들은 후원자들로부터 일정 형태의 보상을 받게 된다.
연주행위에 대한 물적 보상과 예술적 성취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연주자들에 대한 물적 보상과 명예직 수여 등의 정신적 보상은 그들의 음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음악 장르의 개체발전에도 많은 부분 기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술활동에 있어서 물적, 정신적 토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동서양의 음악사를 두루 살펴볼 때, 경제적으로 풍부한 지역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다양한 예술장르들이 실험, 개척, 발달된 사실과 당시 사회의 지적, 정신적 흐름을 주도해나간 그룹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시도된 사실 등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폄하되었던 시절 예술인들의 경제적, 지적 위상 또한 높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조선후기의 서울의 도시적 성장은 예술의 수요를 확대하였고 예술인들의 수요 또한 증가하도록 하였다. 연주 기량이 높은 예술인들은 연주 대가로 넉넉한 보상을 받게 되고 아울러 예술인들의 위상도 조금씩 높아지게 되었으며, 예술인으로서 갖는 자의식 즉, ‘전문인으로서의 예술인’이란 의식도 점점 깊어지게 된다.
궁중에서 악공이나 악생의 신분으로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가질 수 없었던 음악인들로부터 ‘독립된 예술인’으로서의 상을 그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조선후기라는 변화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예술가들의 활동반경이 보다 넓어지면서 그들의 전문가로서의 직업의식은 점차 깊어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예술 후원자들이 기여한 부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술 후원자들의 정신적․물질적 후원을 통한 음악활동이 당대 음악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송지원 “조선시대 음악(인)과 후원의 양상” [한국의 예술지원사], 2009, 미메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