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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후원의양상

<음악후원의 양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음악 소통은 음악(작품), 연주자, 감상자를 모두 갖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음악 작품과 그것을 연주할, 혹은 노래할 연주자,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감상자를 두루 갖추고 연주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음악 소통’의 현장이 확보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때 연주자와 감상자는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 자신이 감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연주행위는 그 연주의 목적과 기능에 따라 일정 보상이 수반될 수도 있고, 보상과는 무관하게 자족의 형태로 그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즉 일정 보상이 이루어지는 연주행위는 ‘노동행위’에 대한 대가를 얻는 경우에 해당한다. ‘연주’라는 영역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특수 분야이고 소통의 형태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연주행위는 ‘노동’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일정한 대가는 정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연주행위 자체를 ‘노동’이라 표현하려면 한 개인의 정신수양이라든지 인격도야, 취미활동 등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연주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일정한 외부적 수요에 따른 연주, 즉 ‘소통’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연주행위와 그에 대한 일정한 보상이 이루어졌을 때 이는 노동의 한 형태로 존재하게 되며 이에 대한 보상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라 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형태 혹은 후원체계는 보편적인 위상을 지닐 수도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 음악기관인 장악원(掌樂院) 소속의 음악인은 직급에 따라 정해진 급여를 받았다. 이러한 경우 장악원 소속의 음악인들이 궁중에서 펼치는 각종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은 그들 음악인 사회 내에서는 보편적인 위상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음악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현장과, 음악 수요의 양상은 다양하다. 음악연주를 담당하는 개별 음악인들의 연주기량도 제각각이고, 음악을 필요로 하는 집단 혹은 개인의 후원 형태 또한 일률적이지 않으므로 보상, 혹은 후원의 형태는 한결같지 않다. 왕실에서의 악가무(樂歌舞) 연행을 비롯하여 민간에서의 특정한 연회의 현장, 예컨대 어느 집안에서 회갑연이 베풀어진다거나, 과거 급제자의 집안에서 삼일유가(三日遊街)를 행한다거나, 혹은 큰 병에서 회복되어 잔치를 베푼다거나, 기타 특수 의식을 거행할 때의 경우처럼 음악연주 목적과 수요 형태가 각각 다르다. 또 그 음악이 연주되는 자리를 마련한 주최측의 사회적, 경제적, 지적, 문화적 특수성이 있고 악무(樂舞)를 연행하는 사람들의 기량에 따른 차별적 대우 등, 여러 복합적 변수가 있으므로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체계와 그 행위를 후원하는 틀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 연주자들에 대한 후원은 연주자들을 직․간접적으로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단순한 취미 이상의, 전문 음악인으로서 예술적 자질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연주능력은 연주자로서의 최고 대우를 보장받는 일이고 보다 안정된 후원제도에 편입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연주에 고도의 전문성을 지니기 위해, 최고의 예술적 경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보상은 때론 자족에 그치기도 하고 거액의 포상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명예직을 수여하는 등의 정신적 보상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보상은 연주자의 생활기반이 되는가 하면 새로운 예술 창조의 물적, 정신적 토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후기 사회가 되면 경제력의 향상과 함께 그 어느 시기에 비해 예술의 향유층이 두터워진다. 예술 전반의 향유층이 두터워진다는 것은 음악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수요가 이전 사회에 비하여 점차 확산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음악 수요의 확산은 음악을 연주할 사람들에 대한 수요를 전제한다. 특히 조선후기 서울의 경제적 성장은 서울 지역을 음악 수요가 가장 왕성한 곳으로 만든다. 그 결과 서울 중심의 새로운 음악문화가 창출되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음악이 소통되는 다양한 현장에서, 다시 말하면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보상형태에 대해 파악하는 일은 전통시대의 예술인들, 다시 말하면 그 신분이 사회적으로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시대에 활동했던 예술인들이 특정한 예술후원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사회에서 어떠한 물적 토대에 바탕을 두고 예술활동을 전개해 나갔는지 알아보는 일과도 같다. 물론 조선시대에 특별하게 규정된 예술후원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 분야에서 활동하던 예술인들은 다양한 후원형태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후원이 정기적이고 지속적이며 일정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안정된 형태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후원자, 후원집단, 후원기관의 직․간접적인 후원은 조선시대 예술인들이 존립할 수 있었던 일정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후원에 의한 예술인들의 활동양상과 그 보상에 따른 역학관계를 가늠해 보는 일은 조선시대 예술인들을 활동하게 했던 사회경제적 토대, 정신적 토대를 진단해 보는 일이며 나아가서는 조선시대 음악사회의 구조를 진단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음악인들의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형태, 후원제도에 대해 연구하는 일은 그 자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연구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다. 18세기 서양의 음악가들의 경우 후원자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서가 일부 남아 있기 때문에 후원자와 음악가가 어떠한 조건으로 합의하고 연주활동을 벌였는지에 대한 내용 일부를 알 수 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의 경우 후원자 에스테르하지 백작과 맺은 계약서가 남아 있다. 그 계약서에는 가운데에는 “요셉 하이든은 집사의 지위를 갖는다.” “하이든은 항상 깨끗하게 정복(흰 스타킹, 흰 셔츠, 땋아내린 긴 머리 차림)을 착용해야 한다.” ”백작이 작곡을 요구할 때면 언제나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 ”그 작품의 소유권은 백작이 갖는다.“ ”백작의 사전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작곡할 수 었다. “하이든은 매일 반 굴덴을 식사비로 지급받는다.” “하이든은 연간 400굴덴의 금액을 1년 4회로 나누어 지급받는다.“ ”이 계약은 1761년 5월부터 3년 만기로 해소된다. 만일 3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기 원한다면 그 생각을 6개월 전에 알려야 한다.” “만일 백작을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경우에는 악장의 자리로 승격시킬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라도 그를 면직시킬 수 있다.”와 같은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아울러 2개의 사본을 서로 교환하고 사실을 확인한다는 기술이 부기되어 있다.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활동하던 하이든의 경우 그를 후원하던 백작과 상당히 구체적인 단계에 대해서까지 세부적인 계약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음악가의 지위 규정, 복장, 작품의 소유권, 식사비 액수, 연봉 등의 내용이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어 유럽 후원자들의 후원형태의 단면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한국 음악사회에서는 이러한 성격의 계약규정이나 계약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음악사회에서 음악가와 후원자와의 관계는 성문법으로 가시화된 규정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관습적으로 전해지는 암묵적 합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표현이 더 옳다. 또 획일화던 규정을 일률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가와 후원자의 관계와 후원양상은 한 마디로 각인각색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하이든과 같은 계약서는 없지만 여러 문헌기록에서 산발적으로 드러나는 후원형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비로소 조선시대 음악이 소통되던 여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연주행위에 대한 보상 혹은 후원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 알아볼 수 있고, 또 연주행위의 보상에 대한 음악인들의 역학관계 등에 대해서도 살필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보상, 후원체계가 예술의 발전에 어떻게, 어떤 형태로 기여하였나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보상체계의 존재 양상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보상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예술후원자(patron)와 보상의 객체이면서 수혜자인 음악인 양자의 존립 양상에 대한 규명도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문헌
* Hogwood, C, 1980, "Music at Court" London: Gollancz
* 이장직, 1986, [音樂의 社會史], 전예원
* 송지원, 2003, 「여성음악가 계섬」 [문헌과 해석] 통권 23호, 문헌과 해석사
* 송지원 “조선시대 음악(인)과 후원의 양상” [한국의 예술지원사], 2009, 미메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