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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제작

악기의 제작

▶ 악기도감(樂器都監)

조선시대 악기와 제복(祭服) 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세웠던 관청. 세종 이전에 이미 두번씩 설치된 바 있으며, 1424년(세종 6)에도 악기제작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이 때 제작된 악기들은 생(笙)·지·화(和) 14, 우(炳) 15, 금(琴) 8, 슬(瑟) 10, 대쟁(大箏) 3, 아쟁(牙箏) 3, 가얏고 2, 거문고 2, 당비파 2, 향비파 2 등이었다. 그 뒤로는 임진왜란 이후 1624년(인조 2)과 병자호란 이후 1646년에 종묘제례악의 복설을 1년 앞두고, 이 때 정윤박(丁潤璞)이 감조전악(監造典樂)으로 큰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악기제작을 위한 임시기관은 악기감조색(樂器監造色, 1430)·악기수개청(樂器修改廳, 1627)·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1682) 등이 있었으나, 인조 이후에는 악기조성청에 의하여 주로 악기가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韓國音樂史(張師勛, 正音社, 1976), 樂掌謄錄硏究(宋芳松,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0).

▶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조선 후기 악기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청. 이것은 1682년(숙종 8) 종묘 영녕전에 쓸 방향(方響)을 만들려고 처음 설립하였고, 1710년 전정헌가(殿庭軒架)의 편종과 편경의 제작을 위해서 다시 설치하였다.

1744년(영조 20) 창덕궁(昌德宮)의 화재로 타버린 악기를 다시 만들려고 인정전(仁政殿) 악기조성청이 설치되었는데, 이 때 편종 2틀, 편경 2틀, 어(雯)·축(氏)·건고(建鼓)·응고(應鼓)·삭고(朔鼓) 각 1개씩 제작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는 경모궁(敬慕宮) 악기조성청이 설립되어 여러 가지 악기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 때 신득린(申得麟)과 임성주(林成柱)가 감조전악(監造典樂)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1803년(순조 3) 사직고(社稷庫)의 화재로 인하여 새로 악기를 만들려고 사직악기조성청이 설치되었으며, 이때 신광삼(申光三)·김응삼(金應三)·박보완(朴輔完)이 감조전악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韓國音樂史(張師勛, 正音社, 1976), 樂掌謄錄硏究(宋芳松,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0).


▶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

조선 후기 악기의 제조를 위하여 설치되었던 악기조성청에서 있었던 전말을 기록한 책. 3책. 필사본.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사직궁악기조성청의궤 社稷宮樂器造成廳儀軌≫ 등의 세 가지가 있는데 이들을 한꺼번에 ‘악기조성청의궤’라고 한다.

예조에서 펴낸 ≪악기조성청의궤≫는 대체로 악기조성청에 관련되었던 관원의 직책과 이름을 적은 좌목(座目), 임금에게 올린 상주문서를 모은 계사(啓辭), 상관에게 올리는 글을 적은 품목(稟目), 동등한 관청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이문(移文), 상급관아가 하급관아에 보낸 관문(關文)을 적은 내관(來關), 상급관아에서 하급관아로 보낸 공문서를 적은 감결(甘結), 악기조성청에서 일하였던 공장(工匠)과 사용된 물품 및 제조된 악기를 기록한 의궤로 구성되었는데 이러한 문서들은 연월일의 순서로 적혀 있다.

〔내 용〕≪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는 1744년(영조 20) 10월 14일 밤 창덕궁의 인정전에서 화재로 타버린 악기와 물품을 다시 제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악기조성청에서 있었던 전말을 기록한 책이다.

1745년 5월 15일까지 새로 만든 악기들은 편종 32매, 편경 32매, 어(雯) 1, 휘(麾) 1, 조촉(照燭) 1, 축(祝) 1, 건고 1, 응고 1, 삭고 1이었다.

이에 관련하였던 사람들은 장악원제조 조관빈(趙觀彬), 장악원주부 송사흠(宋思欽)·한명덕(韓命德), 음률에 정통하였던 부사과(副司果) 이연덕(李延德), 장악원정 이휘진(李彙晉)이었고, 이들의 지휘 아래서 감역(監役)을 맡았던 악인들은 전악(典樂) 함덕형(咸德亨)·강취성(强就成)·전해담(全海淡)이었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는 1776년(정조 즉위년) 9월 장악원제조 서호수(徐浩修)의 청에 의하여 설립된 경모궁악기조성청에서 있었던 전말을 기록한 책이다.

1776년 9월 이후 악기조성청에 관련되었던 관리들은 장악원제조 정홍순(鄭弘淳)과 서호수, 예조판서 이휘지(李徽之), 예조판서 홍낙성(洪樂性), 장악원첨정 이정환(李晶煥), 전악 신득린(申得麟)과 임성주(林成柱) 등이었다.

이들의 감독과 지휘 아래서 1777년 5월 25일에 완성된 악기들은 편종 32매, 편경 32매, 방향 32매, 진고(晋鼓) 1, 절고(節鼓) 1, 축 2, 장고 2, 어 2, 당비파 1, 향비파 1, 거문고〔玄琴〕 1, 가야금 1, 아쟁 1, 생 2, 훈(塤) 2, 태평소 1, 해금 1, 피리 2, 젓대〔大琴〕 2, 당적 2, 통소 2, 지(聲) 1, 둑(纛) 1, 노고 1, 휘 1, 조촉 1, 대금(大金) 1, 박 2 이상의 악기들이었다.

이 밖에 무적(舞翟)·무약(舞誣)·목검(木劍)·목창(木槍)·죽궁(竹弓)·죽시(竹矢) 및 악공들의 복식도 제조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1777년 3월에 정리된 품목질과 1776년 9월부터 1777년 5월까지로 구성된 이문질, 1777년 3월부터 5월까지의 기록으로 구성된 내관질과 감결질이 있다.

그리고 분야별로 나누어 공장의 이름을 기록한 공장질과 악기 및 의물제조에 쓰인 물품의 수량·무게 등을 기록한 실입질(實入秩), 다음으로 경모궁악기조성청 별단(別單) 및 원역(員役) 별단, 그리고 공장 별단에는 관원의 이름과 임용기간이 기재되었고, 끝으로 별공작등록(別工作謄錄)이 부록되어 있다.

한편, ≪사직궁악기조성청의궤≫는 1803년(순조 3) 11월 3일 밤 사직고의 화재로 인하여 타버린 악기·풍물·관복 등을 다시 만들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악기조성청의 전말을 적은 책이다.

사직궁악기조성청에 관련되었던 관리들은 악기조성도감제조 조진관(趙鎭寬), 감조전악(監造典樂) 신광삼(申光三)·김응삼(金應三)·박보완(朴輔完) 등이었다.

이들의 지휘와 감독 아래 1804년 4월 27일에 완성된 악기들은 편종 8매(황종 2, 고선 1, 중려 2, 유빈 1, 무역 2) 및 편경 17매(황종 1, 대려 2, 태주 2, 고선 1, 유빈 1, 임종 1, 이칙 1, 남려 2, 무역 2, 응종 1, 청황종 1, 청태주 1, 청협종 1)이었다.

〔의 의〕 악기조성청의궤는 1745년(영조 21) 이후 1804년(순조 4)까지 반세기 동안의 기록을 상세히 전하므로, 조선 후기의 음악사연구에 중요한 사료의 하나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奎章閣韓國本總目錄(서울大學校 東亞文化硏究所,1962), 韓國音樂史(張師勛, 正音社,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