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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맹인

관현맹인(管絃盲人)

조선시대 궁중의 내연(內宴)에서 관현 합주나 가무의 반주를 맡았던 맹인으로 관현맹(管絃盲), 고악(瞽樂) 또는 고사(瞽師) 등으로 불리었던 악인의 하나. 주로 관습도감이나 장악원에 소속되어 음악활동을 맡았던 맹인으로서 점복맹인인 고수(瞽䏂)와는 구분되는 악인이었다.
일반적으로 맹인이 음악 활동을 했던 사실은 고려시대부터였던 것 같다. 『高麗史』권 119, 列傳32, 鄭道傳條에 의하면 ‘맹인과 무당의 자식을 모아서 악공을 시키고 있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악공의 자식 중에서 한 사람이 악공직을 세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高麗史』 권75, 志29, 選擧3 銓注) 아마도 고려시대 음악기관인 대악서나 관현방,아악서에서 음악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이와 같은 맹인이 관현맹인으로서 음악활동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였다. 태조 원년(1392)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선포하고 고려시대의 전악서와 아악서를 계승하여 태조2년(1393)에 관습도감(慣習都鑑)을 설치하면서 관현맹인의 관현반주와 여기(女妓)의 노래연습(習樂)임무를 맡게 된 때부터라고 보여진다. 이후 조선시대 음악관장 기관이 관습도감과 악학(樂學)에서 점차 장악서(掌樂署)로 통합되어 예종때 장악원(掌樂院)으로 일원화되면서 관현맹인은 관습도감이나 장악원에 소속되어 궁중 내연에서의 음악연주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관현맹인의 등장 배경은 첫째, 그들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선발되었으며 둘째, 궁중 내연에서는 여자들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남자 악공을 쓸 수 없어 여기와 관현 맹인이 내연의 연주활동을 맡았으며 셋째는 외롭고 가난하여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로서 국가가 구휼사업의 일환으로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에서 비롯되었으며 넷째로 유학을 통치이념화하면서 악학(樂學)과 같은 전문기술은 별도로 잡학(雜學)이라 하여 천시하게 되었으나 음악자체는 국가의례나 연회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인정되어 음악활동 전문가인 악공 등은 양반이 아닌 계층이 담당하면서 관현맹인도 악인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관현맹인의 음악활동을 살펴보면 주로 궁중 음악의 하나인 嘉禮에서 연주활동을 하였다. 특히 연향(宴享)이 주가 되는 진연(進宴)의식에서 음악을 담당하였는데 진풍정(進豊呈)이나 진찬(進饌),진작(進爵) 등의 의례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누에를 치는 의식의 하나인 친잠례(親蠶禮),일.월식과 관련한 구식(救蝕)의식 등에서 이들은 피리,비파,해금,현금이나 비파로써 헌선화나 포구락, 연화대, 몽금척 등의 곡을 반주하였다.
대표적인 관현맹인은 성현의 『용재총화』에 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김복산(金卜山)이 가야금 솜씨가 뛰어나고 한 것이 그 한 예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관현맹으로는 이반(李班),이마지(李亇知),하효달(河孝達) 등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박정순, 「조선후기 기술관교육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1983.임안수,『한국맹인직업사연구』,단국대 박사학위논문, 1986. 장사훈,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1986. 이재숙 외,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연구논총』1, 1998. 윤석우, 「조선시대 管絃盲人에 대한 고찰」,『실학사상연구』19.20, 2001. 이조의 女樂(장사훈,아세아여성연구9,1970),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