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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악사(樂師)

조선시대 아악서(雅樂署)·전악서(典樂署)·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이나 악생(樂生) 중에서 선정되어 우두머리 구실을 하였던 원로 음악인들로서 잡직(雜職)을 담당하였던 벼슬아치. 연산군때는 총률(摠律)이라 하였다.
성종 때 장악원에 우방(右坊) 소속 악공 출신의 악사가 2명, 좌방 소속 악생 출신의 악사가 2명이었는데, 이들은 좌방악사 또는 우방악사라고도 불렸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악사들은 나라의 행사 때 맡은 직분에 따라 집사악사(執事樂師) 또는 집박악사(執拍樂師)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에 발행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악사의 임무는 궁중행사 때마다 악공이나 악생을 거느리고 음악연주의 지휘와 감독을 맡았는데, 예컨대 문소전(文昭殿)의 제례행사에서 연주된 전상악(殿上樂)의 경우에 악사 1명이 악공 39명을 거느렸고, 전정악(殿庭樂)의 경우에 악사 1명이 악공 61명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경국대전≫이나 ≪대전통편≫을 보면, 악사 2명은 정6품의 전악(典樂) 및 종6품의 부전악(副典樂)이라는 잡직을 가졌는데, 이러한 잡직은 체아직(遞兒職)으로서 장악원에서 1년에 네 차례 추천서를 작성, 이조에 보고하여 사령서를 받았다.
악사의 복식은 세종 15년 상호군 박연의 제안에 따라 당.송의 제도를 본받아 비색공복(緋色公服)을 입었고 가죽띠를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樂學軌範, 經國大典, 大典會通. 增補文獻備考, 韓國民族文化大百科辭典. 朝鮮王朝實錄. 掌樂院과 宮中樂人 硏究(宋芳松, 藝術院論文集, 大韓民國藝術院, 1978), 樂掌謄錄硏究(宋芳松,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0), 韓國音樂史硏究(嶺南大學校出版部, 1982),조선시대 樂人의 사회적 지위-宮中樂人을 중심으로(정화자,청예논총8,1994),조선조 음악사 연구(송방송,민속원,200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