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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록

과정록(過庭錄)

조선 후기에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잡록. 박지원(朴趾源)의 둘째아들인 저자가 아버지의 신상·생활상·교우·업적·저술 등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1974년 ≪문학사상≫에 해제와 함께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정약용(丁若鏞)의 맏아들 학연(學淵)의 ≪유산총서 酉山叢書≫ 중의 한권으로 되어 있는 것을 대본으로 한 것이며, 내용은 서울대학교본과 완전히 일치한다.
최근 임형택(林熒澤)에 의하여 박지원의 후손 공서(公緖)가 소장하고 있는 박종채의 초고본이 학계에 소개되었다. 이는 불분권(不分卷) 단책(單冊)으로 완본이나, 산개(刪改) 또는 첨입(添入)하거나 부전지가 붙어 있고, 일부 초서로 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서울대학교본과 비교하면 40여장이 더 있으며, 박지원의 60세 이후의 행적이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말년의 박지원에 관한 기록이 많다. 앞의 50장까지는 서울대학교본과 중복되는데 서울대학교본이 보충되고 정리된 것이다.
≪한국한문학연구≫ 제6집과 제7집에 영인하여 실었다. 또한, 제6집에는 서울대학교본을 임형택의 상세한 해제를 붙여 그대로 실었고, 제7집에는 초고본 가운데서 서울대학교본과 중복되지 않는 부분을 정사하여 실었다.
이 책은 박지원이 죽은 뒤 17년 되던 1822년 봄부터 자료수집에 착수해서 5년의 기간을 소비하여 1826년(순조 22)에 탈고하였다고 저자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간(公刊)을 보지 못하고, 현재 몇 종의 사본만 전한다. ≪한국한문학연구≫에서는 편의상 4권으로 나누었는데, 3권까지는 연대순으로 되어 있고 4권에는 연대에 관계없이 보다 구체적인 행적을 적고 있다. 잡기적인 성격에다 연보적인 체제를 배합하였다.
권1은 박지원의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정, 저작활동, 교우관계, 청나라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쓰는 광경, 가정 내의 인정과 애환, 특히 홍대용(洪大容)의 죽음에 관계되는 이야기 등이 회고적인 논조로 기술되어 있다. 권2는 주로 박지원이 벼슬에 나아가 고을을 다스리는 모습과 실적, 그리고 만년의 생활과 심경 등을 애끓는 자식의 심정을 담아 회고하고 있다. 권3은 박지원이 안의현감(安義縣監)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인 60세 이후의 행적을 소상히 적었다.
내용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박지원의 저작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인데, 젊은 시절의 중요 작품인 9편의 전(傳) 작품의 창작동기를 밝혀 놓아 해석상의 긴밀한 단서가 되게 하였다. 박지원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로는 홍대용·정철조(鄭喆祚)·박제가(朴齊家) 등과 어울려 학문을 강론하고 예술적 취미를 발전시키던 내용이 들어 있다.
박지원은 문체반정을 시도하던 정조로부터 문체문제로 상당한 견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책에서 그 당시의 사정을 기록한 것을 보면, 사실 정조의 속뜻은 장차 박지원을 크게 쓰고자 하여 순정한 글을 지어 올리라 한 것이라 적고 있다.
이 책은 박지원에 대한 전기적 자료로서 문헌적 가치가 큰 책이다. 이전까지 알려진 박지원에 대한 전기적 자료로는 김택영(金澤榮)이 쓴 본전(本傳)과 연보가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을 통하여 인간 박지원에 대한 소략하였던 부분이 깊이 있게 연구될 수 있을 것이고, 아울러 그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연구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윤조(金允朝)의 역주본이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過庭錄(韓國漢文學硏究 6·7, 1982·1983), 나의 아버지 朴燕巖(宋旭 譯, 文學思想 20·21, 1974), 燕巖의 內面的肖像-過庭錄解題-(金泳鎬, 文學思想 20, 197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